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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일본기행 (2) 히메지성(姬路城) 그리고 메이지(明治)유신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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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8.12.05 22:30
  • 댓글 0

백로의 우아한 모습 닮은 히메지성
구마모토·나고야·오사카성 등 3대성
있지만 최초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TV에선 연일 ‘메이지유신’ 특집 방영
무사계급, 자기부정으로 단행한 변혁
‘희생’없는 개혁은 성공 어렵다는 교훈

 

김병길 주필


일본의 3대성(城)이라면 구마모토성, 나고야성, 오사카성이 꼽힌다. 이들 3대성은 모두 가봤으나 이번엔 못가본 히메지(姬路)성을 찾아갔다. 히메지는 고베 인근의 작은 도시이지만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히메지성이 있어 방문할 가치가 충분했다. 히메지성은 1993년 12월 나라의 호류지와 함께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유일하게 외벽이 새하얀색으로, 마치 백로(白鷺)가 들판 위를 나르는 우아한 모습을 닮았다해서 일명 ‘백로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을 가르듯 위풍당당하게 치솟은 6층 대천수. 쇼와시대의 대수리로부터 45년. ‘헤이세이(平成)의 수리’라고 불리는 대천수 보존수리공사는 세계문화유산 겸 국보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 센히메는 7세에 오사카성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죽은 후 오사카의 여름 전쟁때 남편 히데요리는 자살하고 도요토미가는 멸망했다. 센히메는 이때 화염 속에서 구출되었다. 에도성으로 돌아가는 도중 경호했던 혼다 다다마사의 아들 다다토키와 재혼, 이때 센히메가 20세, 다다토키가 21세였다. 센히메의 지참금은 10만석으로 히메지성 산노마루에는 무사시노 코텐이라는 거처가 지어졌다. 아들·딸을 낳은 센히메는 남편 다다토키와 보낸 히메지성에서의 10년이 생애 중 가장 행복했다.


1956년부터 8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1964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히메지성은 규모가 워낙 큰데다 볼거리가 많아서 주요 건물만 둘러보는 데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일본 TV는 ‘1868년 천지개벽’으로 불리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50주년 특집 프로그램을 연일 방송했다. 일본 NHK는 연중 기획인 대하드라마를 1963년부터 방송 중인데 지금까지 나온 57편의 대하드라마 중 20%가 넘는 13편의 배경이 메이지유신이다.


메이지유신은 사쓰마번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 세력들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1868년 정권을 차지한 정치·사회적 변혁 과정이다. 일본을 근대 통일국가로 만든다는 목표였다. NHK가 방송 중인 ‘세고돈(西鄕)’도 메이지 인물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인공이다. 세고돈은 ‘사이고 님’이란 뜻의 가고시마현 사투리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념하는 정부의 공식행사가 11월에 열렸다. 눈길을 끈 것은 내각에서 일왕의 참석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토 에이사쿠 내각 시절인 1968년 100주년 행사엔 1만 여명이 참가했고 쇼와 일왕도 참석했다. 


메이지유신을 둘러싼 최근의 분위기는 한 베스트셀러의 영향도 있다. 이 책 덕분에 메이지유신을 새로 보게 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메이지유신이라는 과오-일본을 멸망시킨 요시다 쇼인과 조슈 테러 리스트’(고단샤)는 조슈번이 장악한 육군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 요시다 쇼인의 주장대로 아시아를 침략하는 바람에 그 결과 일본이 패망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이 옳다는 교육을 NHK 드라마를 비롯해 수많은 방법으로 세뇌시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일본인의 상식은 “메이지유신은 옳았지만 1920년대 중반 쇼와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상해진 것이다. 아시아를 침략하고 미국·영국과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의 그림자는 도쿠가와 막부의 빛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도쿠가와 막부가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전국(戰國)시대 3걸(三傑)이라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현대 일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노부나가가 앞서고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그 뒤를 쫓고 있다. 노부나가가 예전부터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군림하다가 부하에게 배신 당해 중도에 좌절한 재승박덕 지도자의 이미지였다.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전후(戰後) 일본의 고도 성장기였다. 일본 기업들, 특히 종합상사가 세계를 누비던 시절에 노부나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진취성, 결단력, 세계를 꿰뚫어보는 안목,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 개혁성, 새것을 수용하는 개방성의 아이콘으로 포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고, 그 여세가 아직 남아 있다.


이런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현대 일본 역사가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명으로 꼽는데 이견이 없다. 실증적 견지에서 역사를 보면 260여 년간 지속된 평화·번영의 기초를 닦은 이에야스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어떤 영웅은 시대를 초월해야 비로소 그 진가를 음미할 수 있다.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평가는 후세의 몫일 것이다. 


조선의 갑오(甲午)개혁과 중국의 양무운동, 일본의 메이지유신 가운데 메이지유신만 유일하게 자체적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메이지유신은 무사 계급이 사실상 자기를 부정하며 단행한 체제 변혁이었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내려졌을 것이다. 개혁 과정에서 200만명에 이르는 무사 중 상당수가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해 ‘지배계급의 자살’이란 평가를 받았다. 희생 없는 개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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