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3억5천 국고손실…'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나
MB측도 "죄형법정주의 위배" 주장…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실무자만 책임 묻고 윗선 탈출구 만드는 해석" 지적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전직 국정원장들에게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국고손실 혐의가 포함된 사법농단 재판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부(조영철 부장판사)는 11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에게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가법상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로 본 1심 판단을 뒤집고 단순 횡령죄만 적용했다. 형이 대폭 감경된 배경이다. 

재판부는 "1심이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해 잘못 판단한 것"이라며 "중앙관서장에 해당하는 국정원장은 국고손실죄 항목에서 규정하는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는 횡령한 사람이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횡령 금액이 크거나 특수한 신분일 경우 가중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남 전 원장 등이 실질적으로 회계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고 국고손실죄를 적용해 가중처벌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사법농단 재판을 앞두고 국고손실죄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논리에 힘을 싣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국고손실 등 혐의로 지난달 14일 재판에 넘겨졌다. 2015년 행정처가 공보관실 운영비로 책정한 예산 3억5000만원 상당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관여한 혐의다. 

임 전 차장 혐의 대부분은 직권남용죄로 구성됐지만, 법조계에선 오히려 국고손실죄가 '핵심'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임 전 차장 측이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직권남용죄의 특성상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이 이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굵직한 재판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잇따라 무죄로 판단하기도 했다. 

반면 횡령금 3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국고손실죄는 법정형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규정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임 전 차장이 받는 혐의중 가장 '중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임 전 차장이 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지 않을 경우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대법관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국고손실죄에 대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검찰은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을 적시하며 "전국 법원 예산을 총괄하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며 "임 전 차장과 공모해 3억5000만원의 손해를 대한민국에 가했다"고 설명했다. 

국고손실죄를 좁게 해석하려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법조계에선 "제 식구 감싸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질타가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식의 해석은 국고손실이라는 중죄의 책임을 실무자에게만 묻고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윗선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 측도 지난 10일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인은 의견서를 통해 "회계관계직원은 금전출납업무를 하는 실무자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며 "규정이 지나치게 넓고 추상적이어서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국고손실죄 조항이 범죄와 형법을 명확히 규정해야 하는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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