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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자칭을(乙)이라면서 갑(甲) 행세하는 정치인들
19면 기사보기 신문보기 JPG / PDF
  • iusm
  • 승인 2019.01.09 22:30
  • 댓글 0
   
 
  ▲ 최근 방송을 개시한 홍준표 유시민 팝캐스터 방송 갈무리  
 

"인민은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선거후 권력 휘두르기에 바쁜 선출직


권력 수행 자질 갖췄는지 챙겨봐야



유튜브 등 과잉소통에 여론 착시현상

'24시간, 365일 을(乙) 되는 것 싫어'

정치재개 않겠다는 그말 믿을 수 있나





루소는 “인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선거 때는 간이라도 내줄 듯 굽신거리지만 선거 후에는 인민의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선출직들의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맹점은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들이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 해 겪고 있는 현상이다. 그 사이 한국사회의 정치는 정치인 욕하기가 국민 스포츠처럼 자리 잡을 만큼 효능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 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선(善)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

독일 정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자질과 덕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선의(善意)가 반드시 결과적 선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은 ‘유아(幼兒)적 정치인’이라고 했다. 또 “책임윤리를 망각하는 순간, 정치인의 신념은 이미 좌절된 신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베버가 진정한 정치인의 자질로 꼽은 또 하나는 권력의지다. “정치란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직업이다. 온갖 어려움과 좌절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춰야 한다. 어떤 난관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유럽의 정당들은 청년 정치 리더 양성 시스템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해 왔다. 청년들이 정당 대학생위원회와 청년위원회에 들어가 정당의 이념과 운영 방식을 배우고, 현실정치 입문의 길도 찾는다. 마치 ‘유소년 클럽’을 운영해 재능 있는 선수들을 세계적 선수로 발굴·육성하는 유럽 프로 축구팀과 닮았다.

흔히 말하기를 정치는 허업(虛業)일까? 역사의 위대한 가르침을 지키고 그것을 웅변함으로써 박수를 받으며, 현실을 바꿀 엄청난 권력을 부여 받는 게 정치 아닌가. 그 경계조차 불분명한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를 일삼아 자기 진영의 노예들을 양산하거나 권력을 쥐면 약탈의 기회로 삼는 자들에게 정치는 허업으로 귀결된다.

자기 절제와 희생 없이 어려운 민초들에게 정치가 희망을 남기기는 어렵다. 그것을 위한 첫째 덕목은 절제이고, 더 큰 덕목이 있다면 자기희생이다.

50년 넘게 정치를 한 3김(金) 중에 지난해 타개한 JP(김종필)는 유일하게 ‘정치는 허업’이라고 말했다. 반면 YS(김영삼)는 세(勢)라고 했다. ‘세’만 유지하고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DJ(김대중)는 ‘생물(生物)’이라고 규정했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게 변한다는 뜻이었다.

JP의 ‘허업’은 노자·장자가 말하는 수준 높은 허(虛)를 가리킨다. 금배지를 달거나 정권 실세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이것을 ‘실업(實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기 실속이나 차리는 자리로 생각하는 게 실업 개념이다. 갑질이나 하는 자리로 여기지 말라는 얘기다. 자기를 비우고 공심(空心)으로 임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허업’이다.

조선시대에는 도덕만 쟁취하면 권력과 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당쟁(黨爭)은 상대의 능력 부족을 지적하는 것보다 도덕적 결함과 문제를 질타하는데 집중했다. 수 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 정치권은 자신의 도덕성 입증을 넘어 상대방의 부도덕함을 드러내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래서 최근 “한국에서 정권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 때문에 잃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로 표상되는 우리의 정치현실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고 권한이 위임된 엘리트 통치도 아니다. 대의제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의 본질적 취약성을 모두 검토하면서 인적 속성이 아닌 의사소통 문제로 접근해 보다 나은 정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야정치인들이 대중과 ‘직통’하기 위해 너도나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이른바 ‘문자폭탄’이 기승을 부린지 오래다. 특히 선거철도 아닌데 뜨거운 현안마다 쏟아지는 문자 폭탄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쏟아지는 문자에 여론 착시가 빚어지는 측면도 허다하다. 과잉소통이 진짜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선거에 나가기 싫다”며 정계 진출설을 거듭 부인했다. 그는 팟캐스트 방송 ‘고칠레오’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다 을(乙)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지시는 국정 책임자로서 국가의 강제 권력을 움직여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며 자신은 “그런 무거운 책임을 안 맡고 싶다”고 했다.

역사에 기록 된 기해(己亥)년에는 정치적 풍랑이 거셌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선거가 없는 해이기 때문에 일자리 만들기 등 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다.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 추세고,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치열한 정쟁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과거 기해년에서 볼 수 있었던 탄압이나 불필요한 논쟁 대신 복과 부가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2019년이다. 자칭 을(乙)이라면서도 실제는 갑(甲) 행세하는 정치인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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