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서인.  
 

자루- 최서인

낡은 자루 하나 있다

집안 구석에 처박아 놓고

버리기 뭣한 쓸데없는 물건들 죄다 쑤셔 넣은 자루

언제부터 실밥 하나씩 풀려버린 걸까

구멍 나 꿰맸던 자리, 이리저리 끌고 다닐 때마다

뭔가 하나씩 흘리곤 하는데

며칠이 겨우 담기던 누런 월급봉투

늘 젖어있던 식당 고무장갑 한 짝과

주인집 방문 앞에 조아리고 선 여자의 흐느낌 같은 거

양은 냄비에서 피어오르던 죽은 물고기의 비린내 같은 거

저 낡은 자루 내다 버리고 싶었지, 한 번은

안에 것 다 꺼내놓고, 아니

담긴 채로 아무렇게나 묶어 차에 싣고 달렸지

신호를 자주 놓치고 시야는 흐렸지

많은 것을 흘리고 주글주글해진 자루

바로 세울라치면 흐물거리며 주저앉는

이젠 정말 자기가 자루인 줄 아는 자루

밑이 빠져 주둥이로 뭔갈 집어넣으면 그만큼 밀어내 버린다

아무 데도 못 가고 내가 세워둔 자리에서

날마다 조금씩 무너지는 일만 생각하는, 그런

낡은 자루가 하나 있다

그림=배호 화백

◆詩이야기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지 4년이 지났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니 그런 감정도 이제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다. 저 쪼그라든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여자의 심신했던 일생이 떠올라 서글프다.

◆약력

2010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1년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수상,2012년 울산공업센터지정기념 공모전 소설 대상 수상,2014년 김유정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Volume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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