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희생자 조사천 씨 사진 들어 "좌익 선동" 왜곡
칼빈 총상 기록 가지고 "시민군 총에 사망" 주장
'칼빈 총상' 표기 많았던 이유 위로금 등 때문 
칼빈 소총은 시민군 뿐 아니라 진압부대도 사용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5.18 진상규명위원회 차기환 위원(변호사)이 과거 5.18 민주화운동을 교묘히 폄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차 변호사는 2015년 4월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자유민주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5.18 희생자 조사천씨에 대해 '계엄군이 아닌 시민군의 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을 한 이후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유포해왔다. 

차 변호사는 토론문에서 "5.18 기념주간이 다가오면 (조사천 씨는) 계엄군의 총에 희생된 대표적인 사례로 사용된다"면서 "실제 조 씨는 시민군이 쏜 칼빈 총에 의하여 사망하였고, 국립 5.18 묘지 공식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밝혀져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사이트를 캡처한 사진을 제시했다. 해당 사진에는 조사천 씨의 사망 원인이 '칼빈 총상'으로 적혀 있다. 

차 변호사는 또 "이러한 내용은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면서 "시민군의 '혼란'과 '오발'로 인하여 사망한 희생자가 계엄군이 잔인하게 민간인을 사살한 사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 변호사는 그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도 많은 5.18 민간인 사망자들이 진압군이 쓰는 M16이 아니라 시민군의 '칼빈 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렇다면, '칼빈 총'은 과연 시민군들만 사용했을까? 조사천 씨는 차 변호사의 주장대로 시민군에 의해 사살된 것일까?

우선 '칼빈 총'은 당시 진압작전에 투입된 군인들도 사용했다. 이는 5.18 당시 현장 사진들만 봐도 진압 군인들이 칼빈 소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당시 3공수와 11공수부대는 M16을 사용했지만 20사단과 31사단 군인들은 칼빈 소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20사단과 31사단도 진압에 투입된 부대들이다.

따라서 '칼빈 총상'을 근거로 조사천 씨가 시민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차 변호사의 주장은 왜곡이다. 

더욱이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해 봐도 조사천 씨가 5월 21일 전남도청 전일빌딩에 있던 저격수의 총에 맞아서 사망했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로 충격을 줬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저자인 이제의 씨는 "(조사천 씨는)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모욕적일 만큼 왜곡 포인트에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사천 씨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간대는 아직 시민군이 총기를 탈취하고 분배하기 전이므로 시민군이 쏜 총에 맞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칼빈 총상'은 어떻게 해서 '시민군에 의한 총상'으로 등치됐을까?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5.18이 끝난 뒤 보안사 주도로 열린 사체검안위원회(검안위)는 사체 검안 자료상의 총상을 가지고 M16 총상 사망자를 난동자(폭도)로 분류했다.  

군은 M16 총탄을 맞은 경우 군에 저항한 것으로 분류하려했기 때문이다.

반면, 칼빈 총상 사망자는 양민(비폭도)으로 분류했다. 

당시 위원회에 속했던 의사 2명과 목사는 난동자(폭도)로 분류될 경우 위로금 등이 지급되지 않아 최대한 양민(비폭도)로 분류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같은 과정 때문에 M16 보다 칼빈 사망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칼빈 소총을 시민들이 탈취한 사실을 바로 이 점에 접목시켜 5.18 부정 세력들은 당시 시민군에 의해 사살된 사람이 많았다는 주장을 유포시킨 것이다. 

칼빈 소총 사상자들이 많아진 또 다른 이유에 대해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전 조사관이었던 조선대학교 노영기 교수가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기술로는 총상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이 M16 총상인지 칼빈 총상인지 명백히 확인이 안되는 부분 또한 있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조사천 씨의 사망원인으로 당초 기입된 '칼빈 총상'도 정말 칼빈 소총에 의한 총상인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차 변호사는 국방부 과거사 진상조사 결과와 여러 증언들을 묵살한 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차 변호사는 문제의 토론회에서 '계엄군은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시위대가 경찰과 군경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다. 

5.18 특조위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 당시 조직된 80위원회가 5.18 사태를 은폐, 조작'했고, 발굴된 당시 군인들의 체험수기를 통해 군인들의 조준사격과 무차별 사격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특조위가 발표한 존안 자료인 '11공수특전여단 62대대 이 모 중령이 1981년 6월에 작성한 당시 체험수기'에 따르면 공수부대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400m 떨어진 시위대를 향해 '무릎 쏴 자세로 정조준한 채' 사격을 가했다. 차 변호사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위원님들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는게 바람직하다"며 조사위에 추천된 인물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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