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성(聖) 안토니우스는 돼지의 수호성인이다. 기독교 성화에서 흔히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으로 등장하는 그는 T자형 짧은 지팡이를 짚고 돼지 한 마리를 끼고 다닌다. 성인은 돼지가 혹 곁을 떠돌더라도 행방을 알 수 있게 귀에 방울을 달아둬 더욱 특이하다.

어쩌다 성인이 돼지를 끼고 다니게 되었는지 여러가지 설(說)이 있다. 혹자는 마귀가 난폭한 돼지가 되어 나타났다가 성인에게 제압당한 뒤 순한 돼지가 되었다고 하고, 혹자는 사막을 떠돌던 성인이 한때 돼지를 돌봤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성인이 돼지기름으로 약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모든 걸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 성인의 삶이 돼지와 닮았다.

성경과 코란에서 돼지가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이니 먹지도 만지지도 못하도록 선언한 극도의 ‘돼지 혐오’는 유목민의 생존을 위한 생태학적 전략이었다고 분석한다. 문학적 상징성 측면에서 재복(財福)과 탐욕이라는 돼지의 양가성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스타’ 돼지는 중국의 고대소설 ‘서유기’의 저팔계다. 신성과 인간적 탐욕을 동시에 갖춘 ‘괴물’ 돼지다. 서유기 줄거리는 마음 속 괴물을 제어하고 본연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재물에 대한 탐욕이 곧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기해년(己亥年) 돼지해 설날을 맞아 많은 사람이 천년 고찰 경주 불국사를 찾았다. 불국사 극락전 앞에는 만지면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황금돼지상이 있다. 최근 3년간 3,500만 명이 돼지상을 보고 갔다고 한다. 황금 돼지상은 2007년 극락전 처마 밑에서 나무 돼지조각을 발견한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길이 50㎝정도인 나무 돼지 조각은 처마 아래 웅크린 듯 새겨져 있었다.

황금돼지해 기해년에 우리는 더 많은 복덩이들을 볼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최소한 신생아 출산에서 황금돼지의 복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올해 출생아 수는 30만 명 언저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보다 2만 명 적다. 2017과 2018년 혼인건수가 전년보다 약 6%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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