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계기로 작년부터 시작한 한자 공부
어떠한 성과 위함 아닌 배움 자체가 목적
몸과 마음 성숙해지는 배움의 기쁨 만끽

이동우 한국언론진흥재단·작가

요즘 한자를 새로 배우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반년이 다 돼간다. 이전까지는 한자를 접할 일이 없었다. 한자를 공부한 경험이래야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한문 수업시간이 유일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한자로 구성된 것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어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어떤 한자인지 잘 알지 못했을 뿐더러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한자를 배워야 하겠다는 결심이 우리말의 뜻을 좀 더 풍성하고 알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거창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어느 순간에 한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한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간 것은 독서를 통해서였다. 신영복의 <담론>을 읽다가 좋은 뜻을 지닌 문구가 많아 노트에 옮겨 적기로 했다. 마음의 양식이 되는 문구들을 한번 만 읽고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책에 나오는 좋은 문구들을 하나 둘씩 노트에 적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한자도 배우게 됐고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재미있는 유래도 알게 됐으며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자성어(四子成語)의 뜻도 명확해 졌다. 새로 한자를 익힐 때 마다 그것이 우리말의 어떤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지도 찾아보았다. 한자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높아졌고 내친김에 한자를 더 공부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엔 천자문(千字文)을 새로 배워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한자를 한 글자씩 익히는 것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주지 못할 것 같았다. 지루하지 않게 한자를 배울 방법이 필요했다.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논어를 읽기로 했다. 서점에 가서 논어 책을 한 권 구입하고 노트도 새로 샀다. 이후로 매일 아침마다 논어를 한 구절씩 읽고 있다. 노트에 옮겨 적으며 뜻과 의미도 되새긴다.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때 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한 상태가 된다. 고요한 평온의 마음속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논어를 한 구절씩 읽고 쓸 때 마다 마음도 조금은 넓어지는 것 같고 정신적으로도 더욱 성숙해 지는 것 같다.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이 참으로 즐겁다. 학창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구나 싶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이런 즐거움을 알았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배운 것을 가지고 시험을 봐야 하고 대학입시의 경쟁에 내몰려야 했던 학창시절의 공부가 즐거움이 될 리는 만무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학생들에게도 공부가 즐거움이 돼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논어를 배우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배운 것을 가지고 어딘가에 써먹기 위함도 아니고 이것을 가지고 시험을 치러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배움 자체가 목적이다 보니 배움이 즐거움이 된다.
한자를 암기하려는 노력도 않는다. 배움이 목적이 돼야지 수단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암기하지 않으려 하니 배운 것을 잊어버려도 답답하거나 짜증나지 않는다. 오늘 배운 한자가  시간이 지나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생각나지 않는 한자가 있다면 책을 다시 보면 되고 노트에 다시 써 보면 된다. 배운 것을 잊어먹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 대수겠는가.
논어를 배우고 있다고 뽐내거나 자랑하지도 않는다. 고리타분한 한자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해 봤자 재미있게 들어줄 리도 만무하거니와 오히려 어깃장 눈초리를 받을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논어를 읽으며 마음의 수양을 쌓아 간다.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의 양식이 된다. 오래전에 쓰여 진 글귀이다 보니 요즘의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아무려면 수 천 년 간 이어져 온 지혜의 샘에서 길어 올릴 것이 없겠는가. 매일 아침의 논어 강독이 마음을 다스려 준다. 내면에 남아있는 해묵은 고뇌와 갈등도 말끔히 씻겨 내려가고 몸과 마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과정이 즐거우니 이것이 진정 배움의 기쁨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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