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개입설 근거로 '김정일 파멸의 날' 발췌
해당 서적은 '음양오행' 다룬 비전문 정감록
지만원 내세운 '탈북자 수기'도 출처 불분명
법원 "지만원, 사법부·입법부·행정부 모두 무시"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북한군 개입설'을 단정적으로 주장했지만 그 근거는 불명확했다. 어떻게 600명이나 되는 북한 특수부대가 남한 광주에 침투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일까. 

지 씨의 황당한 주장의 근거는 지난 2013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그 내용은 누군가 미래를 예측한 '정감록'에서 따온 것이었다. 대법원이 이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20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 씨는 지난 2013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시스템클럽' 게시판에 [DJ, 최고의 친일파-빨갱이-광주시민 학살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지 씨는 "탈북자들 수기에 의하면 김대중은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며 "이들에 의해 광주 시민들이 학살당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 근거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 때 두 사람 사이 차내 밀담을 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30년 넘게 자금을 원조 받았고, 5·18 당시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때도 김 주석의 도움이 컸다는 등 내용이다. "미국 CIA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차내 밀담을 포착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씨는 이 같은 주장을 펴면서 2004년에 나온 책 <김정일 파멸의 날>을 발췌·인용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발간된 최신 서적이라고도 언급했다. 출판사와 저자 실명까지 밝히면서 권위 있는 책처럼 소개했다.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해당 서적의 정확한 제목부터가 <예언서 정감록을 통해서 본 김정일 파멸의 날>이다. 허구에 가까운 추측을 적어 놓은 비전문 예언서인 것이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음양오행과 태양흑점의 증감에서 이론을 구성한 YMD 파동 분석을 통해 김정일의 운명을 밝혀 북한 미래를 예측한 책'이라고 명시했다.  

"CIA가 차내 밀담을 포착했다"는 지 씨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저자는 '영상을 통한 독순술(입술 움직임과 얼굴 표정으로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로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지 씨가 일종의 예언서를 사실인 양 왜곡·편집한 셈이다. 

지 씨가 탈북자들의 수기라며 '북한군 개입설'의 근거로 든 책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도 객관적이지 않은 자료였다. 1·2심 법원 모두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은 출처나 증언자들이 불분명하고 그 내용 또한 검증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이처럼 법원은 지 씨가 내세운 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지 씨의 주장이 우리나라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의 판단과 정반대라고 꼬집었다. 

'북한군 개입설'과 '광주시민 학살' 등 주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재심 무죄 판결 ▲신군부 세력에 대한 사형 선고 ▲5·18 손해배상 판결 등 사법적 판단과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 등 입법·행정 과정을 모두 무시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주최한 공청회에서도 지 씨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며 "학살을 무력진압한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미 6년 전 허위 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유죄가 최종 확정됐지만, 이번 한국당 일부 의원의 5·18 망언 사태로 지 씨의 '북한군 개입설' 주장은 다시 한번 불씨가 붙었다. 

지 씨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 '시스템클럽'에 하루 3~4개꼴로 5·18 폄훼성 글을 올리고 있다. 오는 22일부터는 매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연설도 갖는다.

탈북 활동가들은 이에 맞서 '지만원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대책위는 지 씨로부터 북한군이라고 지목된 당사자들을 직접 찾고 향후 법적인 조치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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