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미세먼지 농도 10㎍/㎥ 오를 때 사망위험 4.9% 높아져’
울산 산업단지 배출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 대기오염 물질 탓
울산권 대기 환경청 설립 요구 외면 정부 ‘국민 생명권 무시’ 

 

강정원 편집국장

동유럽 헝가리의 영화 음악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호사가들이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이 음악은 제목처럼 우울한 음색이 가득하다. 안개가 짙게 내린 날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죽음의 그림자라도 내릴 것처럼 스산해진다. 미세먼지가 짙게 깔린 울산의 겨울날이 ‘글루미 선데이’ 장면과 자주 오버랩 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내뿜는 ‘죽음의 재’가 내리는 부다페스트의 겨울 풍경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안개가 자욱한 ‘우울한’ 동유럽 국가들은 하나같이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의하면 동유럽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는 인구 10만 명당 3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의 동유럽 국가들도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 높은 자살률 때문에 이들 동유럽 국가의 고가차도나 철교에는 자살 방지를 위한 높은 장벽이 설치되어 있다. 세계대전과 구소련의 지배 등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국민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몰아간 측면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 년의 절반 가까이 국토를 짓누르고 있는 혹독한 추위와 안개 등 기후와 관련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삼한사온’이라는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패턴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삼한사온 대신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라는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울산의 하늘도 겨울철 내내 사흘이 멀다하고 자욱한 미세먼지가 점령하고 있다.

자살을 부르는 동유럽의 안개와 울산의 미세먼지 중 어느 쪽이 위험할까.

최근 고려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에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울산의 미세먼지 농도가 10㎍/㎥ 오를 때마다 사망 위험이 4.9%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종태 고려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에 낸 논문에 의하면 대기오염물질이 특정 인구집단(도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미세먼지의 농도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각 도시의 사망률(호흡기, 심혈관질환)이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미세먼지 농도가 10㎍/㎥ 오를 때마다 사망률은 서울 0.6%, 부산 1.5%, 인천 2.3%, 대구 0.6%, 광주 -1.1%, 대전 -0.4%, 울산 4.9%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업도시인 울산과 화석연료 소비가 많은 항구도시가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다.

이는 울산의 미세먼지가 서울 등 다른 대도시들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PM10), 이산화질소(NO2), 이산화황(SO2), 오존(O3) 등의 물질이 섞여 시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울산의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상기시켜주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UNIST 최성득 교수는 지난해 울산은 계절과 상관없이 연중 미세먼지에 함유된 독성물질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울산에서 채취한 대기 시료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의 농도와 비율을 분석한 결과 사시사철 농도가 높은 것을 확인했다. PAHs는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 시 나오는 독성물질이다.

최 교수는 특히 울산 시가지 동쪽에 있는 국가산업단지와 주요 도로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해풍을 타고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PAHs 농도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봄철 고농도 미세먼지 기간이 아니더라도 울산은 연중 독성물질을 함유한 미세먼지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울산의 미세먼지에 독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선박 연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등을 꼽았다.

지난 15일부터 시행된 미세먼지 저감·관리에 관한 특별법(미세먼지 특별법)에 따라 정부와 울산시 등 각 지자체들이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며 호들갑이다. 하지만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산업도시 울산의 미세먼지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없다.

울산 지역사회는 그동안 ‘울산권 대기환경청 설립’ 등 국가 차원의 울산 미세먼지 대책을 세워달라고 촉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며 국민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있다. 울산지역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드러났는데도 진전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울산시도 ‘직무 유기’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울산의 겨울이 동유럽의 겨울보다 더 춥고 우울하다. 미세먼지가 더 극성을 부릴 봄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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