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 1916년 그해 가을은 조선백성들에게 잔인한 계절이었다. 일제의 착취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심했다. 조선의 쌀 수확 대부분은 일본으로 강제 유출되고 조선의 쌀값은 폭등했다. 조선 백성들에게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 아니라 또 다른 보릿고개였다. 헌병에게 경찰권까지 부여한 조선총독 데라우치는 1916년 6월 24일 조선총독을 사임하고, 같은 해 10월 19일에는 총리대신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다. 데라우치는 전근대적인 형벌인 조선 태형령을 법제화하는 등 무단통치로 수많은 조선백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 준겸은 일제의 간악한 통치에 맞서 목숨을 던질 각오로 1915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결성한 광복회에 몸을 담았다. 조선국권회복단중앙본부와 풍기광복단이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광복회를 결성 한 이후 대한광복을 위해 투쟁하려는 독립지사들이 광복회로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은 김좌진, 노백린 동지가 광복회 입단을 위해 찾아온다는 소식에 준겸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 백야 김좌진, 훗날 청산리전투로 독립전쟁사 최대승리로 이름을 올린 그는 1916년 광복회에 참여해 활동했다. 박상진 총사령은 부사령 이진룡이 운산금광 현금 수송 마차 공격 사건으로 체포되자 김좌진을 광복회 부사령으로 임명하여 지린광복회가 조직된 만주로 파견했다. 김좌진은 박상진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이는 박상진총사령 순국 후 김좌진이 지은 만사(輓詞) 「곡박의사상진씨(哭朴義士尙鎭氏)」에서 자신을 ‘의제(義弟)’로 칭하고 ‘결의도원이십년(結義桃園二十年)...’ 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노백린 3.1운동 후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軍務總長)을 맡은 독립지사다. 22일 오후 7시 30분 울주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3.1 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뮤지컬단이 참여하는 창작뮤지컬 ‘마지막여정-고헌 박상진’ 공연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극작가,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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