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독립 위한 선조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민주주의 권리 누릴 수 있어
후손의 마음으로 보훈정신 계승을

박인서울산광역시 남구의회 의원

온 나라가 경축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나 또한 그런 분위기에 취해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해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조국독립을 위해 피 흘리신 선열들처럼 ‘대한독립만세’를 목 놓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일상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간 지난 시간들은 나를 한없는 혼란 속으로 이끌었다.

너무나 형식적이었고 보여주기식 일색이었던 3․1절 경축행사에 대한 단상은 차치하고라도 울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고헌 박상진 의사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관심은 나를 한없는 부끄러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혼란과 부끄러움은 ‘3․1만세운동 후 100년, 과연 역사는 흐르고 있는가?’와 함께 ‘난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일어난 1919년 3․1만세운동을 시작으로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진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까지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보았다. 문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1945년 8월 15일, 분명 대한독립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3․1운동 후 100년은 아직도 미완성이 아닌가. ‘대한독립만세’로 시작된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외침은 친일논쟁에 사로잡힌 채 이념 논쟁으로 까지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오늘이 1960년 4월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일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3․1만세운동이 주는 역사적 의의는 독립에 대한 민족의 간절함인 동시에, 국민주권의 시대를 가능하게 한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독립 된 지 74년. 질곡의 역사를 견뎌내며 세계 질서의 한 축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 뒤에는 ‘일본에 의한 굴욕의 역사를 축복이다’라는 친일식민사관론이 잠재해 있다. 이로 인해 이 땅의 역사는 1945년 이전의 모습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은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말하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이념적 갈등 또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과거로 역행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불편한 마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 징용문제 등 수많은 사안들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당사자들의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하기는커녕 송곳으로 더욱 덧나게 하는 형국이다. 또한 안중근, 윤봉길의사를 포함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라 칭하질 않나, 수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들을 이념논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일부 극우 인사들의 언사는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을 만들어 낸다. “과연 대한민국 미래인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느낄까?”

바르게 되돌려 놓지 못한 역사의 수레바퀴로 인해 10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대간, 이념간, 계층간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대화와 타협보다 내편이 아니면 모두가 투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참으로 두려워진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1948년 반민특위의 좌절에서 멈춰버린 잘못된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되돌려야 한다. ‘위기를 맞아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로 세운다'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의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해묵은 이념 투쟁과 친일 논쟁에서 벗어나 3․1운동 100년이 되는 올해를 삐뚤어진 역사를 곧추 세우는, 단절의 역사를 다시 흐르게 하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역사는 기억돼져야 마땅하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목숨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3․1만세운동 정신이야 말로 보훈정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기에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되새겨야 마땅하다. 형식과 보여주기가 아닌 실질적 대안과 노력으로 시민 모두가 동참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2019년의 봄은 이렇듯 진정한 후손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잡을 수 있는 봄이어야 한다. 그러한 염원으로 먼저 나부터 느슨해진 신발 끈을 조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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