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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조양호 ‘불시착’과 손혜원 ‘니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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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9.04.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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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보국(輸送報國) 항공산업에 헌신
조 회장 가족들 갑질•경영권 발목 잡아
큰 공(攻)에도 지병악화 한(恨) 남겨

 
독설 퍼부은 손 의원, 겸손이 앞섰다면
품격이 뒤따랐을 것
품격은 스스로 얻고 스스로 잃게 되는 것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배역을 맡았다 퇴장하게 돼 ‘인생은 연극’과 같다. 우리는 모두 책으로 낼 만한 인생을 살고 있다. 자서전이라는 게 자기 인생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쓰면 좋은 점도 있지만 우리 인생은 언제 끝나고, 언제 마무리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자서전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을 가다려 쓸 게 아니라 인생을 중간 점검하는 의미로 쓰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법의학자가 마주하는 부검대에는 매일 다른 죽음을 맞은 사람이 누워있다. 집 주변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을 헤매다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은 치매환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었다면 생명을 구했을 만한 가난한 사람, 사고로 목숨을 잃은 듯 교묘하게 위장됐지만 사실은 살해당한 피해자.

부검대 위의 주검은 이미 심장이 멈춰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처지지만 이상하게도 살아 있을 적 그 사람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가난, 고독이 그들의 삶을 지겹게 따라다닌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중 생활보호 수급자의 시신을 부검해 보면 알코올 의존증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10년 동안 컵 라면만 먹고 죽은 무직자 남성의 간은 완전한 지방간이었다. 법의학자가 하는 일은 모든 가능성을 전부 파고들어 사인을 명백히 알아내는 일이기에 사자(死者)에 대한 애도의 표현은 그것밖에 없다.

사람이 목숨을 다했을 때 사망을 알리는 말에는 ‘별세했다’‘작고했다’ 등이 있다. 존경하는 위인이 숨졌을 땐 ‘서거(逝去)했다’이다. 유명하지만 존경스럽지 않은 인물이 숨졌을 땐 ‘사거(死去) 했다’‘사망(死亡)했다’이다. 김정일이 숨졌을 때는 ‘사거했다’였다.

종교인의 경우 가톨릭에선 ‘선종(善終)했다’, 개신교는 ‘소천(召天)했다’, 불교는 ‘입적(入寂)했다’고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LA에서 숙환(宿患)으로 별세했다는 뉴스에 모두가 놀랐다. ‘숙환으로 돌아가셨다’면 사고가 아니라 ‘오래 묵은 병’으로 사망했을 때 관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지병(持病)’이라는 말도 숙환과 비슷하나 말에 담긴 무게감은 조금 다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회장이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에 머물다 올 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말했다. 숙환은 폐질환이었던 것으로 발표했다.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 주주 총회에서 국민연금 등의 반대에 부딪혀 사내 이사 연임에 실패한 뒤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됐다고 대한항공 측은 밝혔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장남인 조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대한항공사장, 한진그룹 회장 등을 역임하며 ‘수송보국(輸送報國)’정신으로 한국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조 회장의 인생엔 굴곡도 많았다. 아버지가 설립한 한진해운을 살리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됐다가 2년 만에 정부 압력으로 물러난 것도 씁쓸한 기억이다.

결정적 타격은 가족들의 ‘갑질’때문이었다. 2014년 큰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2018년에는 둘째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물컵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샀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회장 자신도 배임·횡령·탈세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지난 4월4일부터 소셜미디어에는 ‘#우리아버지’이라는 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밝히는 내용이다. 8일까지 300편 넘게 올라왔다.

발단은 손혜원 국회의원의 글 때문이었다. 손 의원은 부친인 고(故) 손용우씨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국가보훈처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야당에서 제기하자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니들 아버지는 그때 뭐하셨지?’라고 썼다. 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제 아버지를 물어뜯는 인간들을 특히 용서할 수가 없다’고도 썼다. 그러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손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선문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60년 넘도록 일기와 가계부를 쓰면서 육신(肉身) 하나로 버텨왔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아버지는 열한살 때 경북 문경에서 6•25전쟁을 겪었다. 인민군이 우물에 독약을 풀어 넣었다는 소문이 돌자 소년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친구 셋과 짝을 지어 마을 우물을 지켰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공무원이 돼 오씨 등 세 남매를 키우고 유복자가 된 조카와 어린 처남, 처제를 부양했다. 이처럼 손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글을 올린 사람들은 ‘손 의원도 그녀의 부친이 어떻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는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고 조양호 회장은 IMF때 공격적인 투자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시키고, 지구 16바퀴를 돌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일등공신이 됐다. 45년간 항공 외길을 걸어 온 승부사는 가족과 경영권에 발목을 잡히고 지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뜻밖의 ‘불시착’을 하고 말았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충분조건과 후회를 적게 할 필요조건은 오로지 품격이다. 품격은 행복과 비례하며 후회와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니들 아버지는 그때 뭐하셨지’라는 독설을 퍼부은 손혜원 의원에게 겸손이 앞섰다면 품격이 뒤따랐을 것이다. 품격은 스스로 얻고 스스로 잃게 되는 것이다. 막말을 하고 싶을 때가 가장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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