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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시론] 다양한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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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길 울산민예총 감사·보광중 교사
  • 승인 2019.04.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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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로 선정 되지 못한 많은 이들 중
자본가의 기업활동 반민족행위 판별 필요
지나친 순결․엄격주의 후손들 눈물 젖게 해

이병길
울산민예총 감사·보광중 교사


어쩌다 보니 향토사 연구를 하게 됐다. 대부분 직접 현장과 사람을 만나 한 구절의 소중한 자료를 얻는다. 때론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서훈 신청을 해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은 일정 기간 독립운동을 했거나 옥고를 치른 분이다. 대상자의 독립운동 공적뿐만 아니라 활동 이후의 행적 역시 이상이 없어야 한다.

상해 임정에서 재무총장과 외무총장, 그리고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낸 이규홍은 경력으로 보면 독립유공자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보훈처 회신에 따르면, 변절자 혐의를 받았고 귀국 후 아들의 기업에 관여했기에 안 된다고 한다. 변절자 혐의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 임정에서 활동하다 폐결핵에 걸려 귀국 후 몇 년 만에 죽었는데 아들의 기업운영 참가를 행적 이상으로 보는 것이 납득 되지 않는다. 군자금을 제공한 증언과 증인도 있지만, 인정을 못 받고 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임정 요인으로 홍보하지만, 보훈처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 자본가의 기업 활동이 명백한 반민족행위인가의 판별이 분명히 필요하다. 단지 기업을 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상해임정 독립운동 자금의 창고 구실을 한 백산상회나 경남은행처럼 자본의 일부가 독립군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경우도 있다.


울산의 자본가로서 김홍조와 송태관은 뚜렷한 반민족적 행위 없이 친일분자로 여겨지고 있다. 김홍조가 총독부로 받은 목배나 은배는 기업 활동이나 육업사업의 대가로 여겨진다. 그는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를 1909년 창간했다. 송태관과 김홍조는 안희제와 같이 구포은행과 경남은행에 관계했다. 1921년 부산상업학교에 송태관이 24,550원을 기부할 때 경주 최부자인 최준과 같이 김홍조는 1,500원을, 사돈 집안인 양산의 김교항은 300원을 기부했다.

김홍조는 3․1운동 직후 임정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윤현진과 같이 상해 임정을 갔다. 이토 히로부미의 통역관으로 오해받는 송태관은 고종 양위 반대로 귀양을 가고, 백산 안희제와 같이 기미육영회에 참여하고 조선교육개선 건의안을 제출하고, 경남은행장을 지냈다. 그에게 조선 자본가의 긍정적 측면도 발견할 수 있다. 독립유공자는 아니더라도 기업가이기에 친일적 경향이 있다. 반민족행위자는 아니었다.

독립유공자는 포상 훈격이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한 분들이다. 당연히 해방공간에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 활동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월북자는 제외된다. 하지만 1945년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한 사람들이 추구한 국가는 대한민국도 인민공화국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제 독립 유공자, 건국 유공자, 민주화 유공자, 사회 유공자 등으로 새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독립유공자의 기준은 1945년 해방 이전 독립운동가로 한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과 북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다.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빛과 같은 존재였던 입암마을의 이관술, ‘울산기자단’을 창립하고 신간회와 울산청년회 활동을 한 강철, 방어진 출신으로 ‘일본지역 조선인 노동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김천해, 보성학교를 건립한 방어진읍 건준 위원장 박학규와 청년운동․신간회 활동을 한 성세빈, 경남적색교원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김경출 등이 그들이다. 또 이관술의 여동생으로 노동운동을 한 이순금, 프롤레타리아 문학가로 활동한 신고송, 교원노조 운동을 한 박두복 등과 같이 월북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은 향후 통일국가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긍정적일 것이다.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은 국가와 전쟁을 치르듯이 서훈 신청을 하고 있다. 비전문가인 유족들이 입증자료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실재로 후손들이 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 정부가 나서서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나아가 지자체 역시 향토사학자를 지원해 지역의 항일·독립 운동사를 발굴하고 정립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반민족적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경우 신청자 행적의 경중을 따져 유공자 등급을 낮춰 인정하는 등의 대책마련도 필요하다. 지나친 순결․엄격주의적 태도가 독립유공자 후손을 눈물 젖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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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길 울산민예총 감사·보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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