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 한 업체로부터 신발 1만 켤레 기부받았지만 
북한 내 전달처 찾지 못해 수개월째 창고에 보관만

북한지역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신발 1만 켤레를 기부받은 부산의 한 해외의료봉사단체가 최근 북·미관계가 경색되면서 전달처를 찾지 못해 수개월째 신발을 창고에만 보관하고 있다.

북한에서 개성공단 폐쇄 직전까지 남북협력병원인 개성병원을 8년 동안 운영한 부산지역 해외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 이 단체에 지난해 11월 말 신발 1만 켤레가 들어왔다.

그린닥터스에 따르면, 부산의 한 신발유통업체가 일반인 눈으로는 찾기 힘든 미세한 흠이 있어 수출하지 못한 새 신발을 기부한 것. 

유아용 신발에서 청소년 운동화까지 무게만 10t에 달하며 소비자가로 환산하면 4억 원 상당에 이른다. 

그린닥터스는 지난달 통일부에 북한지역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전하고 싶다며 문의했지만, '쉽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통상 북에 건넬 구호품은 유엔 대북제재 품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 통일부 승인을 받아 북한 사회에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물품을 받을 북측 민간단체를 섭외해야 하는데, 통일부나 정부 기관이 나서 주선하는 것이 아니어서 민간 차원에서 북측 파트너를 구해야 한다.

문제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미관계 경색으로 남측의 대북협력민간단체가 교류 사업을 함께 할 북측 민간단체를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남북 협력 민간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측의 민간단체와 접촉하기 시작해 각종 대북지원을 모색하고, 부분적으로 지원도 이뤄졌다. 하지만 3월 들어 북측과 연락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이다. 

통일부 한 관계자도 "지금은 북한과 오랫동안 접촉선이 있는 민간단체도 북측과 연락하기 힘든 상황이라 유엔 대북제재에 걸리지 않는 구호품을 아무리 철저히 준비하더라도 북에서 이를 받을 단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은 "이번에 개성시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꼭 전하기 위해 통일부에 여러 차례 문의를 해봤지만,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경제제재 조치가 해제되지 않아 전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다양한 전달 루트를 찾아보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린닥터스의 한 관계자는 "대북지원에 동참한 업체가 좋은 일을 하고도 혹 유엔 대북제재 방침에 어긋나 수출 등 사업에 차질이 빚을까 봐 걱정까지 해야하는 상황"이라고도 전했다.

빛을 보지 못하고 몇 달째 창고에 쌓여있는 구호품과 대북제재 대상이 될까 봐 기부업체의 신원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남북협력민간단체의 안타까운 현실이 대북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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