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관철 불발…코너 몰린 손학규
홍영표 발언에 김관영 '협상 오판' 도마
안철수계 孫 사퇴요구 본격화
"창당정신으로 안철수·유승민 나서라"
"새집 짓자" 높아지는 제3지대 러브콜

8일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가 성과 없이 끝나면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관철'로 사퇴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던 손학규 대표는 더욱 코너에 몰렸다. 여기에 김관영 원내대표의 패스트트랙 '협상 오판'이 겹치며 당의 내홍은 극심해졌다.  

안철수계는 손 대표에 대한 사퇴요구를 본격화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유승민계(바른정당계)의 사퇴요구와 함께 '창당주주' 모두 손 대표에게 등을 돌린 셈이다.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안철수-유승민'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유일하게 손 대표가 기댈 곳은 손 대표를 옹호하며 신당창당 등 '제3지대론'을 주창하는 호남계 의원들로 파악된다. 이에 호응하는 민주평화당의 '러브콜'이 강하게 이어지면서, 손학규 체제의 바른미래당은 한치 앞도 모르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시작부터 '빈손 의총' 조짐…홍영표 발언에 '폭발' 

이날 바른미래당의 의총은 시작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손 대표 '찌질이' 발언으로 당원권 1년 정지 처분을 받은 이언주 의원은 의총장 진입을 저지당하자 거세게 반발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의총 공개 여부를 두고도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 간 기싸움이 펼쳐졌다. 

'빈손 의총'은 시작부터 어느정도 예견됐다. 의총이 시작된 뒤 지상욱 의원 등 바른정당계는 '호남 신당'에 대한 손 대표의 움직임을 '해당행위'라며 항의했다. 손 대표가 민주평화당 인사들을 접촉하고, 국민의당 출신 박주선 의원이 "제3지대론에 손 대표가 공감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지적한 것이다. 

손 대표는 "여러 정계 개편설이 있지만, 거대 양당체제 극복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 단합하자"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계 역시 이를 옹호하면서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불거지며 대화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이 상황에서 양측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수정안' 표결을 두고 다시 맞부딪혔다. 수정안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되,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에게만 적용하고 나머지 기소권은 검찰에 주는 안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같은 안이 민주당과 잠정합의가 됐다고 주장하며, 수정안이 의총에서 추인되면 패스트트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 측은 수정안을 과반 표결로 밀어붙이려 했으나, 바른정당계에선 3분의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맞섰다.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폭탄 발언'이 떨어졌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기소권과 수사권이 모두 있는 공수처에 대한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의총장으로 흘러들어 가자, 바른정당계의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유승민 전 대표는 "바보같이 이런 의총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협상도 제대로 안된 마당에 바른미래당 내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김 원내대표는 끝까지 잠정 합의가 됐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민주당과 합의안을 만들어오겠다"며 한발 물러서며 의총은 마무리됐다.  

결국 지도부 책임론, 패스트트랙, 계파 갈등 등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의총이 됐다.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은 손학규 대표다. 4·3 국회의원 보선 참패 이후 사퇴론에 휩싸인 손 대표는 '패스트트랙 관철'을 지렛대로 리더십을 회복하고 자신의 숙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며 더욱 위기에 몰린 형국이다.  

김 원내대표가 후일을 도모하며 내세운 민주당과의 '합의안'도 비판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홍 원내대표가 저렇게 나오는 상황에서 합의안을 작성해주겠느냐"며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의지가 없다는게 너무나 잘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합의안을 가져와 의총을 다시 연다 하더라도, 여전히 패스트트랙에 대한 찬반 의견과 '표결'에 대한 갈등이 깔려 있는 바른미래당으로서는 어느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회의론이 가득한 상태다. 

이같은 결과는 사퇴 요구를 벗어나려는 손 대표와 패스트트랙에 '직'을 건 김 원내대표의 '무리수'로 빚어진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민주당이 원하지도 않는 패스트트랙을 이처럼 밀어붙인건 자리를 지키려는 두 사람의 욕심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안철수계 孫 사퇴요구 본격화…'제3지대' 손짓 

의총 이후 뒤숭숭해진 당 분위기를 넘어 원외에서는 손 대표 사퇴 요구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안철수계 바른미래당 전현직 지역위원장 90여명은 이날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에서 오후 4시부터 3시간 가량 회동을 가졌다. 김철근 전 대변인(서울 구로구갑 지역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공감대를 이뤘고, 손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는 중지가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지난 9일 1차 회동을 갖고 손 대표 거취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안철수계는 이날 한층 강도높은 발언들을 내놓고 사퇴를 압박했다. 이태규 의원을 통해 사퇴 의견을 전달한 뒤, 손 대표가 '버티기'로 일관하면 연판장이나 사퇴성명 등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놨다. 

안철수계는 손 대표를 영입하고 당 대표로 지원했던 터라 손 대표로서는 방어막이 허물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창당 주주인 '안철수-유승민' 복귀 목소리도 터져나오며 손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손 대표가 기댈 곳은 호남 신당창당 등 '제3지대론'을 주장하는 호남계로 분석된다. 이들은 손 대표를 옹호하며 민주평화당과의 당대당 합당 등으로 '빅텐트'를 꾸려 내년 총선을 치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평당 박지원 의원은 손 대표를 향해 "험한 꼴 보지 말고 새집 짓자"며 연이어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다. 패스트트랙 관철 불발과 안철수-유승민계의 사퇴 압박에 몰린 손 대표의 선택지가 점점 좁혀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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