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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창] 「도가니」의 무진보다 더 치명적인 울산의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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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편집국장
  • 승인 2019.04.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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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공단서 밀려 오는 백연 품은 ‘거대 안개구름’
공장 굴뚝서 내뿜는 수증기 유해물질 포함 가능성 높아
‘안개구름 줄이기’ 울산형 미세먼지 대책 시작점 돼야

 

강정원 편집국장

새벽부터 봄비가 내렸던 수요일 오전이었다. 지역 환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턱대고 “울산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신문을 제대로 만들려면 현장에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주요 이슈로 보도한 ‘울산형 미세먼지’에 주목하고 있었다. 울산매일은 이달 초 환경부가 발표한 ‘전국 626개 TMS부착사업장 배출량조사’결과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온 나라가 미세먼지 때문에 난리법석인 상황에서 울산 산업단지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증가했다는 통계를 뽑았다. 배출량이 늘어난 유해물질은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불화수소, 암모니아, 염화수소 등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들이었다.

지난 19일 ‘여수산단 화학업체들이 측정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작했다’는 환경부 발표 이후 거의 매일 미세먼지와 관련한 보도를 주요기사를 내 보냈다. 울산에도 배출량을 조작했을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에 지자체의 전수 조사 등을 요구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때마침 열린 시의회와 울산과기원 등에서 주관한 미세먼지 관련 토론회와 포럼의 내용도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그런데 친구의 말대로 ‘현장’을 소홀히 했다. 그동안 지역의 미세먼지와 관련한 이슈들이 환경부의 발표와 연구자들의 연구결과 발표에 의존해 왔던 게 사실이다. 기자들을 현장으로 보낼만한 사건이 없었다고 변명해보지만 궁색하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공단 쪽으로 차를 몰아 장생포 어느 마을 언덕까지 갔다. 환경오염이주사업으로 주민들이 모두 이주한 매암동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좁다란 도로 한 쪽엔 이주정책에 포함되지 못한 장생포주민들이 아직 살고 있다. 텃밭에 푸성귀가 제법 자랐다.

이곳에선 울산 본항을 중심으로 한 울산미포산업단지와 용연공업단지, 울산석유화학단지, 더 멀리 온산국가산업단지까지 가시권이다. 비가 그쳤는데도 공단은 물론 시가지 전체가 안개구름 속에 푹 잠겨 있었다.

친구는 “저걸 울산 사람들이 다 마시고 있다”면서 누군가를 향해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친구가 가리키는 안개구름 밑 공장 굴뚝에서는 뿌연 연기가 쉼 없이 피어올랐다.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하늘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거짓말 같이 거대한 안개구름이 되어 도심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 부는 바람 때문이다. 용연과 온산공단 쪽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구름은 조선소가 위치한 동구 쪽으로 구름 띠를 만들고 있었다. 친구는 “흐리고 비만 오면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했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대부분이 스팀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백연’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친구다. 백연은 공장의 굴뚝과 대형냉각탑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를 말한다. 굴뚝에서 내뿜는 뜨거운 증기가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하연 연기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겨울철에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울산 공단의 백연은 사시사철 흐린 날이면 언제든지 올라온다.

저 많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모두 ‘백연’일까?. 친구는 설사 백연이라고 해도 문제라고 했다. 백연을 만드는 수증기에는 공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흡착 등을 통해 포함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유해 물질이 구름 안개에 뒤섞여 도심으로 가고 있다니... 소름이 돋았다.

친구는 공장의 연기가 단순히 ‘백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규모 백연 배출 지점으로 차를 몰았다. 울산항 인근 공장과 용연 공단 공장에서 내뿜는 백연은 지나가는 사람이 공포를 느낄 만큼 강렬했다. 새로 조성된 신항 쪽은 용연공업단지와 온산국가산업단지의 ‘백연’들이 모여 마치 화재가 난 듯 연기로 가득했다. 일부는 거대한 구름이 되어 시가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백연’의 유해성에 대해선 기업과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공단의 대기 배출물을 가득 품은 안개구름이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산업단지의 유해배출물을 도심으로 옮기는 백연이 만드는 안개구름을 줄이는 것을 ‘울산형 미세먼지 대책’의 시작점으로 하면 어떨까. 이미 산업현장에는 ‘백연’을 최소화하는 설비가 나와 있다고 하니 관계당국과 기업들이 관심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가 안개로 가득한 ‘무진(霧鎭)’이다. 작가는 야만적인 성추문이 발생한 도시의 분위기를 짙은 안개로 묘사했다. 공장의 미세먼지를 품고 시가지를 짓누르는 울산의 안개는 ‘도가니’ 속 무진의 안개보다 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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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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