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등 1년 중 기념일 가장 많은 5월
 행복한 시간만큼 금전․심리적 부담 크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위해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시간 만들어 갔으면

최은진
세무법인 충정 울산지사 대표세무사

요즘 ‘쿠바앓이’를 하는 중년여성들이 많다고 들었다. 올드카 투어, 랑고스타 특식, 무지개와 석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뜨리니다드 하늘 등을 담은 사진과 함께 쿠바음악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낭만이랑 벽을 쌓고 산다’는 필자도 우연찮은 기회에 모 방송사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었다. ‘가정의 달’이라는 핑계로 은근히 속내를 드러내 보기도 한다. 남편으로부터 ‘철없는 아내’라고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설렘도 컸다. 그 덕에 필자의 버킷리스트가 또 하나 늘어나고야 말았다.

5월은 1년 중에 가장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 기념일이 쭉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꼭 챙겨야 할 날도 그만큼 늘어난다. 아무래도 직업상 비용 등 금전적인 것에 민감해서일까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5월 개인 휴가 계획과 예상 경비' 설문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일반 직장인들이 5월에 지출하는 추가 비용은 평균 54만원이었다. 어버이날이 평균 27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어린이날 13만원, 스승의 날 5만원, 부부의 날·성년의 날 9만원이었다. 기념일의 취지대로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 그래도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추가 지출이 그만큼 늘어나면 금전적·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푸념이지만 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게 씁쓸한 현실이고 보면 ‘낀 세대’인 ‘3050 직장인’들의 한숨이 깊고도 무겁게 느껴지는 건 어쩜 당연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뉴스를 보거나 이웃집 소식을 듣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는데 있다. 해외관광지엔 중장년층 단체뿐 아니라 개별 여행을 나온 한국인 청춘 남녀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경비도 문제지만 시간적 여유마저 없는 소시민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기가 죽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따라가기 힘들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인식이 부각되고,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인생관도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세태가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 연봉에 상관없이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린다거나, 퇴근 후 SNS로 하는 업무 지시, 잦은 야근 등으로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다면 기피직장 1순위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만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니 권장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가장 소중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준다면 말이다.

그런데 ‘가정 해체’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 걱정이다. 가족윤리가 바닥에 떨어져 패륜 범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일가족이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취업스트레스를 받아 온 30대 여성은 부모 앞에서 분신을 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열두 살 소녀는 계부·친모·친부에게 신체학대와 성학대를 오가는 중복학대를 당하다가 결국 그들에게 살해됐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가정의 달에 똑같은 걱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도 한심하다 못해 안쓰럽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해체되는 쓰라림을 우리가 더 이상 맛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해왔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5월의 기념일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다. 행여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 소중함을 망각한 채 넘어가 버리면 두고두고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되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라도 아이가 밝게 자라고 부모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부부사이가 더 좋아지는 5월을 만들었으면 한다. 가족 외식도 좋고 효도 여행이나 부부 여행도 의미가 있겠다. 가정이라는 보금자리가 다시 웃음꽃이 필 수 있다면 무엇을 마다하랴.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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