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야사(野史)로 기록해둬야 할 이야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내실에는 흔들의자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 관저에 찾아오면 그 흔들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이 배석할 때가 많았다. 최순실은 3인방으로부터 국정보고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끔 바로 옆 침실에 들어가 쉬고 나오기도 했다. 최순실이 결론을 내리면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도 그런 식으로 결정됐다.

최순실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 청와대의 보고서를 전달 받고 한 차례 관저에 갔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공식회의나 외부 행사가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렀다. 탄핵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렇게 1475일 동안 최순실과 함께 ‘관저 대통령’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취임사 회의에 최순실이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이 파일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증거로 꼽혔던 ‘정호성 녹음 파일’ 중 하나로 박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3년 2월 서울 모처에서 녹음됐다. 90분 분량의 이 파일에는 ‘지시하는’ 최순실과 ‘추임새 넣는’ 박 전 대통령, ‘대답하는’ 정 전 비서관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대학교수 등이 만든 취임사 초안을 살펴 본 최순실은 한숨을 쉬며 “이런 게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되나, 너무 말이 안 된다”며 정 비서관을 질타했다. 이어 “늘어지는 걸 취임사에 한 줄도 넣지마”라며 “쓰세요. 받아 적으세요”라고 지시했다.

최순실의 의견에 동조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목소리도 담겨있었다.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거나 지시를 내리기도 했으며, 박 전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처럼 “에, 예, 예”라며 대답했다. 2013년 2월 권좌에 오른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이 같은 국가권력 불법공유를 3년 넘게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나라는 청와대 내실 흔들의자처럼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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