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루이지에나 유화공장 완공한 롯데
한국도 `세일가스 혁명' 영향권에
롯데 KTX환승센터 재추진발표 안도

 
한국조선해양 본사 서울 설립
현대중공업 본사 서울이전 소동 불러
울산이 그 정도 회사 수용 자격 못되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앞둔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추진하자 본사 이전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국내에서 적폐 신세지만 우리 기업인들이 외국에 나가면 칙사 대접을 받는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베트남 총리는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무실로 초청해 1시간 동안 면담했다. 10만명을 고용한 삼성의 베트남 투자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지난해 방한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단독으로 만나 파격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공장 설립을 요청했다.

롯데가 세계 3대 오일 허브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 만의 석유화학 기지인 루이지에나주 레이크찰스에 31억달러(3조6,000억원)을 투자한 롯데케미칼 루이지에나 석유화학공장을 완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동빈 롯데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트럼프는 면담 후 트위터에 “(롯데가) 일자리 수천개를 만들었다”면서 한국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5월 9일 루이지에나 롯데케미칼 공장 준공식은 한국계 성악가의 한미 양국 국가 독창으로 시작됐다. 7년간 이 사업에 매달린 롯데 관계자들의 표정은 숙연했다. 이 공장은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 건설한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플랜트다. 미국의 풍부한 세일가스와 한국의 축적된 석유화학 기술이 없었다면 문을 열지 못했다. 롯데는 공장 건설을 위해 20여개의 한국 기업을 참여시키고 울산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기술자와 한국에서 만든 설비를 들여왔다.

롯데는 세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올을 200㎞ 떨어진 저장소에서 가스관을 통해 이 공장으로 가져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예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만든다. 기존의 원유에서 나온 나프타로 만든 제품 가격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바다를 건너오는 운송비만 없다면 미국산 세일가스 제품을 당해 낼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이 공장의 첫 생산품이 울산 공장에 도착했다. 한국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시작된 ‘세일가스 혁명’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반면 지금 국내 투자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주요 선진국들은 법인세를 낮추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법인세를 22%에서 25%로 올리고 상법 개정안을 통해 기업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개혁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이러니 기업들이 생산기지와 법인을 해외로 옮기는 ‘탈 한국’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기업을 홀대하면 투자 확대를 통한 고용창출과 경제 활성화는 어려워진다.

롯데는 고속철도(KTX) 울산역 앞의 복합환승센터 시설 부지를 매입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하지 않고 있어 총수의 고향에서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했다. 강동리조트도 마찬가지다. 울산시민 교통편익 증진과 울산 관광활성화에 꼭 필요한 사업들이다. 기업 이익만 앞세운다는 시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뒤늦게 KTX복합환승센터는 당초 계획대로 착공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한 고비를 넘겼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본사를 울산에 둔 대기업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따라서 세계적인 조선업체의 본사가 울산에 있다는 사실은 울산 시민들의 자부심을 크게 살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중간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고, ‘현대중공업’을 그 자회사로 신설하는 물적 분할을 결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분할 후 현대중공업 본사가 울산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져 울산시민들의 걱정이 커졌다.

현대중공업 본사 서울 이전의 근거는 무엇일까. 분할이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출자함으로써 대우조선해양이 한국조선해양 자회사가 되고, 현대중공업 그룹이 산업은행과 공동으로 한국조선해양의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로 바뀐다. 이 절차는 현대중공업 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합의한 기본적인 요건이다.
이에 노조는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이 본사를 서울에 두게 되므로 현대중공업이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세수(稅收)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그리고 기업결합 승인 후 대우조선해양까지 자회사로 두는 중간지주회사이자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사업의 투자와 엔지니어링 등을 담당하는 회사다. 따라서 서울에 본사를 두는 것은 R&D인력 유치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조선 계열사 관리에 효율적이라는 것이 현대중공업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을 좌지우지할 거대 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로 축소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한국조선해양 본사가 울산에 자리 잡지 못하면 조선 메카 울산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시민들의 우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동해안의 어느 도시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미국 서부 캐나다 국경과 가까운 시애틀에는 세계 최대 항공업체 보잉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보잉사는 분사를 했지만 본사는 여전히 시애틀에 두고 있다. 최근엔 아마존 역시 분사를 마쳤지만 본사는 여전히 시애틀을 지키고 있다.

이번 현대중공업 본사 이전 의혹을 겪으며 울산은 여전히 굴지의 기업도시가 아니라 일개 굴뚝도시에 불과할 뿐인지 의문이 크다. 명색이 대한민국 공업화의 메카로 50여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아직 한국조선해양 정도의 회사를 품을 수 있는 산업도시도 못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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