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매일-반구대포럼 공동 기획 '대한민국 인류유산 대곡천암각화군'
13. 탁월한 보편적가치를 보는 다른 방법

깊은 곡류 대곡천 바위면에 7000년전 그림을 새겼던 선사인들의 발상 놀라워
암각화 고래는 고기·뼈·기름을 주는 최상의 가치… 오래 기억하기 위한 수단
자연 현상을 추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결과가 천전리 각석 기하무늬 일수도

 

곡선의 계곡과 삼각말단면(三脚末斷面)의 산 지형을 가진 대곡천 주변 경관과 암각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형상분석 집착 벗어나 선사의 발상에 주목
김한태 울산학연구센터장

솔직히 바위그림의 형상을 눈여겨 봤지만 머리와 가슴에 잘 닿지 않았다. 나의 소양 부족을 탓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예술품 앞에서 이렇게 주눅 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월하다면 울림이 있을 것이며, 보편적이라면 한 조각의 영감이라도 얻을 것 아닌가!

어느 날 저 미술품을 커다란 액자의 안과 밖으로 나눠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엉킨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탁월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고, 보편적으로 이해할만한 것이 있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동굴처럼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천추에 길이 전할 사건을 일으킨 발상, 추위를 막고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서 바위에 형상을 새기려고 한 의지, 변변찮은 도구로써 수천년 전승할 작품을 빚은 솜씨, 고래라는 먹을거리를 주요 소재로 선택한 안목’ 등이다.

발상�의지�솜씨�안목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지니고 발휘한다. 대곡천 선사인은 그때 그 상황에서 도약했다는 것이 비범한 것이다.

피카소 풍의 그림은 지금은 보통사람도 그린다. 다만 그때 그 상황에서 그릴 수 있었겠느냐는 응답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대곡천 암각화가 발견된 이래 40년 이상 시선을 좁게 고착시켜 왔다. 형상분석, 새긴 수법,제작연대 등에 골몰했다. 또 그림의 풍화 속도와 심도에 설왕설래했다. 뚝방쌓기에다 터널뚫기 같은 요상한 보전방식에 머리를 썩혔다.

전문가와 정치 권력의 다툼에 함몰돼 누릴 것도 못 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자각이 들면서, 보석뿐 아니라 보석을 껴안고 있는 반지도 함께 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암각화의 세세한 형상에 고착시킨 눈을 주변경관으로 돌렸다. 

그때부터 나는 바위그림을 보다 더 자세히 보려고 발돋움 하지 않는다. 또 현대 작가들이 바위그림을 나름대로 이모저모 재현하는 작품에는 시선을 거둔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창의를 자극받는 곳이지 본뜨고 변형할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40년 이상 암각화 형상의 해석에 특히 집중해 왔다. 망원경을 달아서 보려고 했고, 발을 적시며 다가서 보려고 했다. 그 결과 희미한 도상에 실망하고, 설혹 판독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라는 느낌에 빠지곤 했다.

혹시 나처럼 소양결핍을 탓하며 낙심한 분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액자의 안팎을 함께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액자 바깥에서 비범한 도약 여건을 본다

대곡천 오솔길은 액자와 같다. 나는 액자의 언저리를 걸으면서 3000~7000년전 선사인이 시도했던 놀라운 발상이 나에게도 번뜩이길 바란다.

그리고 아득히 먼 시절 이곳이 원시림으로 덮였을 상황을 상상해 본다. 숲의 아치로 덮힌 좁은 골짜기는 굴과 같았을 것이다.

굴은 뭔가? 인류가 야생에서 살아가기 위해 처음 찾은 피신처며 창조의 산실이다.

서양의 암각화는 대체로 굴속에서 발견된다. 물에 잘 녹는 석회암 지대가 많고 땅속 굴이 잘 발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굴이 희소한 이 땅에서는 숲이 하늘을 가린 좁고 깊은 계곡을 반 동굴로 여겼을 수 있다. 천전리각석 앞의 좁고 굴곡진 하천은 거의 반 동굴이다.

나는 2012년 이 지형을 깊이 생각했다. 드론 마스터에게 의뢰해 사진을 찍었다. 희한한 모습이 보였다.

뱀의 또아리 같은 곡류가 보였다. 심산유곡도 아닌 곳에 나타난 깊은 곡류는 시선을 빨아들였다. 높이가 같은 수백 개의 산이 보였다. 봉고동일성(峰高同一性)은 이 지대가 공룡시대 호수의 평평한 바닥임을 알게 했다. 대곡천에 깎인 산의 단면들은 삼각형으로 드러났다. 삼각말단면(三脚末斷面)이 주는 특성이 이채로웠다.

곡류의 원과 삼각 도형, 선사인이 이 지형을 몰랐을까? 안경과 망원경의 도움을 받는 현대인 관점으로 답하기 어렵다. 짐승의 발자국만 봐도 어떤 짐승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아내는 원시시각으로 봐야 답할 수 있다.

중첩된 원과 삼각에 대한 특별한 인상은 인류 보편적 심상을 자극했다. 결국 그것은 원주율과 삼각함수를 만든 가장 기본적인 착상을 배태했다. 인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E. 타일러는 “인간의 사고와 의지는 물결과 유전자 배열, 그리고 동식물의 성장 양태에 지배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사진을 파격적으로 신문의 1면 전면에 실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 사진을 스크랩했다. 그리고 계곡 곳곳에 동판에 새겨 암각화 해설에 활용한다. 대곡천을 새의 눈으로 보면 선사인이 어떤 시선으로 이곳을 선택하고 액자로 활용했는지 좀 더 이해하게 된다.
 

동심원, 마름모, 나선무늬가 가득한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각석.

#액자 안쪽에서 ‘먹을거리’의 진선미를 본다

나는 바위그림에서 진선미를 보며, 진선미의 궁극 가치가 ‘먹을거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진선미(眞善美)란 무엇인가? 2014년 몽골 알타이산맥 암각화를 답사할 때 한 학자로부터 미(美)에 대한 해석을 들었다. 양(羊)과 대(大)가 결합된 글자로, 먹을거리인 양이 많음에서 미적 감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반구대암각화에 등장하는 고래가 의미하는 것이 풍요한 먹을거리 그림이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다. 또 진(眞)은 비수 비(匕). 고기 육(肉). 차림 상(床)의 결합이다. 칼로 다듬은 고기를 상에 가지런히 놓은 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을 표방한다. 선(善)은 양(羊)이 네모 반듯한 상에 얹은 모양인데, 그런 형상이 착한 상태다. 이런 해석은 ‘설문해자’를 비롯, 한문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연구서가 뒷받침한다.

여기서 선사인이 그림을 새긴 의미를 캘 수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고래는 고기와 뼈와 기름을 주는 최상의 가치 즉 진선미였다. 선사인은 무엇보다 그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렸다. 미술학자들은 ‘기억하기’는 그림의 원초적 요소로 간주한다. 잘 잊어버리는 인간 뇌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이론이다. 

선사인들은 옛 울산만에서 새끼를 낳고 길렀던 고래가 기력이 쇠잔했을 때 가장자리로 몰아 잡았을 것이다. 그 고래는 무엇보다 좋고 아름답고 선한 존재였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그렸으며, 다시 돌아오길 기원하며 새겼을 것이다. 

또 선사인은 기억을 넘어 고래가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했다. 따라서 고래 형상을 바위에 단단히 새기고 봄이 되면 돌아오기를 철썩같이 믿었다.

지금 우리는 고래의 육질은 미곡과 축산으로, 고래의 뼈는 철강과 알루미늄으로, 고래의 기름은 원유로 대체된 시대에 산다.

너와 나는 대체된 이런 일에 종사한다. 그 속에 나 같은 범상한 존재도 대곡천을 거닐며 기발한 착상을 얻어 개인적인 진선미를 달성할 궁리를 한다.

한편 천전리 기하무늬 그림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 암각화의 기하무늬는 농경시대 소산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의 풍흉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하늘과 땅, 비와 바람은 절대적이다. 이런 현상을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현상은 너무 크고 넓었다. 알짜만 그리고 겉은 버려야 했다. 기하학적 추상화란 비상한 방법이 고안되었고 그 결과 동심원. 마름모. 나선 무늬가 등장했다.

이런 그림이 새겨진 대곡천 저 아래에는 인류의 먹을거리를 창조하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있다. 그곳에서는 동심원에서 원자 궤도를 보며 마름모에서 분자 모형을, 나선에서는 유전자 배열을 파악한다. 그리고 신수종산업에 필요한 먹을거리를 창조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먹을거리의 지속가능성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대곡천 암각화를 본다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먹을거리를 기억하고 지속적인 산출방안을 신탁받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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