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 몰린 美 디트로이트 시티 살린 건
JP모건 등 투자를 아끼지 않은 기업들 때문
美 디트로이트 시티와 닮은 현재의 울산 상황
기업·도시 상생협력으로 시련 딛고 재도약을

경민정 울주군의회 의원

1950~60년대 미국 최대 중공업 도시. 미국 자동차 Big 3(포드, 지엠, 크라이슬러)를 이끄는 핵심기지. 유명 뮤지션 에미넴과 에이콘을 탄생시킨 대중음악의 주요 원천지. 이것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환유 ‘디트로이트 시티’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당시 이곳에 생산 공장을 두었던 미국의 자동차 회사 빅3는 미국 경제 발전에 큰 몫을 했는데 1950년 당시만 해도 도시의 인구가 180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런 디트로이트 시티에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제조업의 중심을 이끌었던 디트로이트가 도시의 쇠락과 오랜 기간에 걸친 방만한 시 운영으로 지난 2013년 180억달러(한화 약 20조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에 이르게 된 것!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년 뒤인 2018년, 미 중북부의 맹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파산 당시의 디트로이트시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인구는 전성기 시절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고 범죄율이 치솟았으며 7만8,000여채의 집이 빈집 또는 폐허로 남겨지는 등 극심한 슬럼화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이를 지켜보던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이 발 벗고 나서 당시 1억달러(한화 약 1,026억원)를 지원한 것이다.

이 지원금은 주택 수리, 빈집·폐허 정리에 2,500만 달러, 일자리 창출과 직업 훈련에 1,250만달러, 자영업자 지원 700만달러, 도시 전철 건설 550만달러 등으로 분배되어 위기상황의 적재적소에 투입되면서 도시를 되살리는 결정적인 씨앗이 됐다. 그 당시 JP모건은 성명에서 “디트로이트가 살만한 도시, 역동적인 경제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장점과 특성을 가졌다고 확신 한다”며 지원 배경을 설명했고 이와 더불어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디트로이트에 일자리 창출과 경제 발전 등의 명목으로 2,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대대적인 투자를 계기로 다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디트로이트를 향해 그 도시의 시민들은 “디트로이트를 살린 건 기업이다!”라고 외치며 기업과 시민, 서로 간의 강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 울산과 디트로이트 시티, 그 시작은 닮았지만 끝은 판이하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47년의 긴 세월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함께 성장해왔음에도, 정작 그 노동자들의 눈을 피해 3분 30초 만에 졸속으로 끝나버린 논란의 주주총회. 울산시민과 정치권이 함께 염원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한 본사 이전의 아픔. 한낱 경영권 승계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기업의 가치.

노동자들이 가족과 회사를 위해 성실히 일만하는 사이에 수년간에 걸쳐 이뤄진 한 대기업의 이기적인 행보는 19년 연속 무분규를 달성했으며 불황을 함께 극복하고자 5년 연속 회사에 임금협상을 위임해 온 소박한 노동자들의 가슴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디트로이트시티와 울산. 두 지역은 비슷한 시기에 한 나라의 산업 전반을 이끄는 심장이었고, 두 지역의 시민은 스스로를 기꺼이 내어준 순박한 노동자들이었으며, 두 지역의 이름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견줘도 결코 아깝지 않을 만큼 그들의 일터를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현대가 울산이고 울산이 현대다’라는 말이 울산시민의 절박한 심정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의 효율성을 내세워 야박하기 짝이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 앞서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있게 한 노동자들과 울산과의 상생을 좀 더 윤리적으로 고민 할 수는 없었을까.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을 지날 때면 늠름하게 걸려 있는 고 정주영회장이 주창했던 기업의 가치가, 지금 이 순간 날카로운 배임으로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디트로이트 시티는 현재, 기업과 도시의 적극적인 상생협력으로 보란 듯이 되살아나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울산도 디트로이트시티의 사례를 교훈 삼아 지금의 시련을 딛고 재도약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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