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현대인은 평균 9초에 한 번씩 카메라에 포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에 가면 CCTV(폐쇄회로 TV)에 실시간으로 찍힌다. 길을 건널 때면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블랙박스에 달린 카메라로 찍어댄다.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크고 작은 화면 속에 출연하는 배우가 된다. 보이지 않는 눈이 나를 추적하고 있다. 안전해지려고 만든 기계들이 오히려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2015년 미국 버지니아 주 한 대학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와 시술을 앞둔 환자가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누른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휴대 전화에는 담당의사가 환자를 조롱하고 일부 오진을 내리는 내용이 그대로 담겼고, 환자는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배심원단은 해당 의료진과 의료 법인에 총 5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결정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수술실 CCTV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지만,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다. 2017년 다시 제출된 법안에 대해서도 의료단체의 반대 등 논란이 계속되면서 법제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술실 CCTV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 최초로 경기도가 지난해 10월부터 관내 의료원인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현재 도 의료원 산하 6개 병원으로 설치가 확대됐다. 그동안 대리수술 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의료 분쟁의 증거로 CCTV가 사용될 우려가 있어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촬영 영상이 유출되면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반대 논리 중의 하나다. 국회토론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에서는 찬반 양측이 비슷한 주장을 내놓으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환자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의사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합의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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