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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인근 선사유적 연구 통해 `제작 집단' 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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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6.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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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매일-반구대포럼 공동 기획 '대한민국 인류유산 대곡천암각화군'
14. 대곡천암각화 제작 시기·집단은?

 

황성동 ‘골촉 박힌 고래뼈’
암각화 제작 신석기시대까지
입암·굴화서 발굴된 함정 흔적
사냥돌 유구는 청동기시대 연관

 
수렵·어로 생산 수단 집단
대곡천 가까운 곳 생활 가능성
대곡천 선사시대 유적 조사로
암각화 ‘제작 집단’ 찾아내야

 
목책이 설치된 함정 유구 등이 출토된 울주군 입암리 유적 발굴 당시 모습. 함정을 활용한 고래잡이는 반구대암각화 그림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만큼 청동기 시대 대곡천과 연결된 태화강 인근에서 거주하던 집단이 암각화를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울산문화재연구원 제공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숙제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듯하다.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문제에 대하여 접점을 찾고 있고 또 실제로 댐의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하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반구대유적 보호를 위한 사연댐의 ‘수위조절문제’는 한국암각화학회를 중심으로 학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댐의 수위를 낮추자고 제기해왔던 사항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적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러운 방안이라고 주장해왔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함께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이 속해 있는 ‘대곡천 암각화군’을 제대로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곡천 암각화군’이 갖고 있는 세계문화사적 보편성과 독창성을 파악하여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추진전략을 다시 수립하는데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2010년 1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상태이다. 2015년에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대곡천 암각화군의 세계유산적 가치 도출』(연구 책임:이혜은 교수)이라는 연구결과물이 나온 바 있다, 필자도 이 프로젝트의 연구 인력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몇 개의 주제를 맡아 연구하였다.

여기에서는 연구내용 중 대곡천 암각화군의 제작 시기 및 제작 집단과 관련한 유적 주변의 고고학적 측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세계유산 등재기준이 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도출을 위한 관련 자료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신석기~청동기시대 제작 추정

대곡천 암각화군의 제작 시기에 대하여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울주 천전리 각석’은 신석기시대 말 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곡천 암각화군’이 조성된 주된 시기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제 태화강유역과 울산만 지역에 분포한 선사시대의 유적 중에서 대곡천 암각화군을 중심으로 반경 20㎞ 내외의 범위에 있는 유적들을 살펴보겠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태화강유역에 궁근정리, 중산동, 약사동유적이 분포하고 있고 울산만 지역에서 부곡동, 황성동, 황성동 세죽 패총, 성암동 패총 등이 확인되었다.

울산만 지역의 신석기시대 패총유적에서 확인되는 동물뼈로는 사슴, 노루, 수달, 멧돼지, 고래, 상어, 다랑어 등이다.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들이 당시대의 동물상을 반영한다고 볼 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동물상이 ‘대곡천 암각화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고래, 상어, 거북, 사슴, 멧돼지, 표범, 호랑이 등 해양동물과 육지동물이 두루 나타난다.
#고래 등 해양 동물 대곡천 유입

또한 반구대 암각화에서 잘 알려진 것은 여러 종류의 고래와 고래사냥장면이 묘사된 그림이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의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신석기시대 중기에 울산지역은 현재보다 해수면이 높아 태화강 중류까지 바다가 이어졌을 것이라 유추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중기에는 태화강 중류까지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해양동물의 유입도 자연스레 이루어졌을 것이다. 해양동물의 유입은 이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한 신석기인의 활동영역이 이 지역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황성동 세죽 패총유적에서 출토된 고래뼈는 함축하는 바가 매우 크다. 즉 황성동 세죽패총의 A구간 유물포함층 1층에서 견갑골과 경추에 골촉이 박힌 고래뼈 2점이 출토되었다. 사슴뼈로 만든 작살이 박힌 고래뼈는 신석기시대의 고래사냥 방법 중 하나를 알려주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작살에 맞은 고래 그림이 확인되므로 작살이 박힌 고래뼈의 출토는 반구대 암각화 제작시기의 상한을 신석기시대로 보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울산지역은 청동기시대 유적이 매우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는 편으로 울산만 지역보다 태화강 유역을 비롯한 내륙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성격도 수렵컁佇括적, 마을유적, 농경유적, 환호유적, 매장유적, 의례유적 등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청동기시대에 이 지역의 인구 밀도가 높았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봉계리, 활천리, 인보리 번답들, 삼정리, 서하리, 구량리, 천전리 유적(이상 대곡천), 교동리, 신화리, 입암리, 천상리, 굴화리, 야음동, 옥동, 무거동 옥현 유적(이상 태화강), 매곡동, 천곡동, 장현동, 연암동, 서동, 약사동 유적(이상 동천강), 그리고 내륙의 검단리, 방기리, 외광리 유적 등이 있다.
고래 사냥의 한 방법을 알려주는 황성동 유적의 ‘작살 박힌 고래뼈'.


대곡천 암각화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의 주제는 주로 수렵컁佇菅화와 관련된 것이고 일부분에 대하여 농경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그림의 주제와 쉽게 대비해 볼 수 있는 유적으로 입암리 유적과 굴화리 유적을 들 수 있다. 두 유적은 태화강과 대곡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입암리 유적은 대곡천 암각화군에서 반경 5㎞ 내외에 위치하고 있는 대규모의 마을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중요한 내용은 내부에 목책이 설치된 함정유구 27기와 돌도끼, 가락바퀴 등 일반적인 생활 도구와 함께 그물추가 62점으로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입암리 함정 유구 통해 청동기시대 암각화 제작 가능성

함정 활용법은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청동기시대의 여러 사냥 수법 중 하나이다. 이 시기의 함정은 짐승으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집, 농작물을 보호하거나 짐승을 사냥하기 위한 장치이다. 입암리 유적 외에 옥동, 연암동, 상연암 유적에서도 함정유구가 확인된다. 그리고 입암리 유적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출토된 그물추의 주거지 당 출토 빈도로서 그 비율이 47%로 인근의 천상리 유적(5%)이나 검단리 유적(9%)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입암리 유적에서 확인된 함정유구의 수나 그물추의 출토비율은 청동기시대에 수렵·어로가 여전히 혹은 일부 집단에게 생활경제에서 중요한 생산 분야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 태화강유역에 살았던 집단 중 일부가 수렵·어로와 관련된 암각화를 대곡천변에 새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수렵·어로용 도구로 흔히 거론되는 석촉, 석창 이외에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청동기시대의 사냥돌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사냥돌은 인류가 중기구석기시대부터 돌에 줄을 묶어 팔매질하여 사용해온 중요한 사냥도구이다. 울산지역의 청동기시대 마을유적에서도 사냥돌이 확인되는데 명칭은 석구, 원구, 석환, 타격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대규모의 유적인 굴화리 유적에서 사냥돌이 다량 출토된 바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사냥돌은 경도가 높은 안산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대부분 지름 6cm 내외이다. 여러 점의 사냥돌이 출토하였다는 것은 청동기시대에 수렵·어로가 중요한 생산 수단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입암·굴화 유적 통해 제작시기 규명해야

 태화강 본류에 있는 입암리 유적과 굴화리 유적은 ‘대곡천 암각화군’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기준으로 입암리 유적은 반경 5㎞, 굴화리 유적이 반경 10㎞ 이내의 지점에 있다. 두 유적 모두 대규모의 거점유적으로 농경이 활발히 이루어진 유적으로 조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수렵·어로와의 관련성도 높은 유적이기도 하다. 대곡천 암각화군과 고고유적과의 상관성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두 유적을 통해 농경 집단이면서도 수렵·어로에 비중을 두었던 집단이 지리적으로 대곡천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였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대곡천 암각화군’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굴조사한 선사시대의 고고학적 자료 중 일부만을 이용하여 양자 간의 연결고리를 소개하고자 하였다. 이제 우리는 ‘대곡천 암각화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 인근의 선사시대 유적을 더 발굴조사하고 많은 자료를 확보하여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실천할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곡천 암각화군을 남긴 ‘사람들’ 즉 암각화의 제작 집단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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