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출시인  
 

아직은  - 강문출

내 생각의 방에는 여러 개의 서랍이 있다 그 중 오래된 하나를 정리하다 검붉은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모든 꽃들이 그 꽃을 중심으로 꽃병에 꽂혀있었다 생각의 감옥인 그곳에서는 모든 풍경이 간수의 뜻대로 늙어갔다

저 정물화를 걸기 위해 스스로 내 가슴에다 대못을 박았다니!

꽂을 수 없는 꽃을 꽃병에 꽂아놓고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꽃병의 꽃이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더 슬프다

젖은 휴지를 돌돌 말아 못 자국을 감추는 내 수법을 벽은 어떻게 이해할까 서랍 속의 꽃병과 그 속에서 장미를 꺼내보는 이런 철없는 생각이나 하는 이가 아직은 나라는 게 나는 좋다

그림=배호 화백

◆詩이야기

과거에 지각된 표상(表象)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와 함께 늙어가서 상상표상이 된다. 이렇게 오래 지내다보면 지각표상과 상상표상은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어느 수필가는 인연은 한번으로 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내 안에서 또 다른 나로 진화하는 이런 비현실적 사고가 예술의 창작에 있어서는 긍정적 요소가 된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여유마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랴.

◆약력

2011년 『시사사』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타래가 놀고 있다』, 『낮은 무게중심의 말』
부산작가회의, 현대시회 회원. 부산시울림시낭송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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