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 동안 ‘즐거운 천국’과 같은 종교적 사후 세계는 죽음의 공포로 인한 인간의 강박이 빚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선 저승 삼차사가 천년간 48명의 망자(亡者)를 환생시킨다. 5만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100억명 가까운 사람이 지구상에 태어났고, 죽어 사라진 약 1,000억명 이상의 사람 중에서 환생해 천국이 있음을 알려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서 말하는 천국의 묘사는 자연 지리와 인간의 상상력을 짜깁기한 소망일 뿐이다.
천국의 대체물인 유토피아는 어떨까. 살아가기 괴로운 이 세상 어딘가에, 즉 이 세상 바깥에 인간을 위한 완벽한 장소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 오랜 신념도 백일몽에 불과하다. 죽음이라는게 이승에서는 이별하는 날이지만 저 세상에서는 생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천도재에 차리는 상을 잔칫상이라고 한다.
죽음을 다른 세상으로의 긴 여행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약 3,000년 전에 번성했던 고대 에트루리아 사람들이다. 
나이듦은 자연스롭게 죽음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람이야기>라는 책에서 삶을 야간열차 여행에 비유했다. “열차는 그대로 달리기 때문에 내린 사람의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 같은 순간에 죽음을 택했다고 해도 열차에서 내리면 모두 자기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추석(9월13일)을 앞두고 ‘추석명절 연휴 실태조사’를 했다. 본인 사후에 남은 가족이 제사를 지내기 바라냐는 질문엔 11.3%만 지내길 바란다고 응답했다. 53.5%는 “기억만 해주면 좋겠다”고 했고 29.1%는 “지낼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남녀간의 인식차도 상당했다. 남성 16.7%는 자신의 제사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2.4%만 동조했다. 명절에 제사상을 차리는 등 가사노동 부담이 여성에게 크게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관행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단한 삶이 ‘저승의 생일’날 받는 제삿상까지도 멀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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