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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천암각화군, 세계문화유산을 꿈꾼다] 2. 예상치 못했던 남한산성의 등재, 전략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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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 승인 2019.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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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유사시를 대비한 임시수도로 종묘와 사직을 지닌 행궁을 갖추고 있었다. 전면 복원된 행궁.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제공)  
 
   
 
  ▲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남한산성 관리 전담기구로 설립된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한승민 운영지원팀장.  
 
   
 
  ▲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의 남문과 성곽.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제공)  
 

#등산과 닭백숙의 명소 남한산성의 대반전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도권 남부 최고의 등산 명소이자 닭백숙이 유명한 곳 정도로만 알려졌다. 병자호란 때 조선 12대 왕인 인조의 피신처로 치욕스러운 패전의 장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런 남한산성이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자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 등재를 추진한 전문가들도 성공하리라고 섣불리 장담하지 못했다.


남한산성은 어떻게 등재될 수 있었을까. 5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실사과정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2009년 출범한 (재)경기문화재단 소속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유네스코 등재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시대 유사시를 대비한 임시수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종묘와 사직을 지닌 행궁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관리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도시라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터만 남아있던 행궁을 전면 복원했다.

또 험한 산지의 산성이 도시를 이루면서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한 사례 역시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실제 조선시대 남한산성 안에는 한때 1,000가구, 약 4,0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신라-고려-조선까지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기술적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세계 유사 유산과 비교 불가한 가치를 입증하라

사업단은 이 같은 OUV를 입증하기 위해 국내외 유사한 유산과 비교연구부터 시작했다.

우선 국내에서는 이미 등재된 수원화성을 비롯해 국내에 현존하는 산성들과 비교했을 때 남한산성은 입지적 조건, 공간적 구조, 역사성, 기능상에서 뚜렷이 차별성이 대두되는 것을 확인했다.

국외 유산과 비교했을 때는 오히려 더욱 남한선성의 OUV를 입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럽과 일본의 성이 지배층을 위한 방어공간이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산성은 유사시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가 피난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중국은 대부분 평지성이고, 산성이라해도 만리장성과 같이 선의 형태로 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경우는 지배층을 위한 공간이었을 뿐 기능이 전혀 다르다. 유럽 등지의 성곽 역시 대부분이 군사기능을 지녔고 일부의 경우 행정기능이 있었지만 평지성이 대부분이었다. 산성도 있긴 했으나 남한산성과 같은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세계유산 전문가들은 “남한산성은 국내외 어떤 유사유산과 비교할 수 없이 매우 독특하고 그 진정성이 높이 평가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남한산성이 훤히 보이는 잠실 고층빌딩에서 실사단 설명회

유네스코 현장실사에서 전략이 더욱 돋보였다. 사업단은 2013년 실사 사전 설명회를 서울 잠실 롯데호텔 28층 통유리가 있는 룸으로 잡았다. 룸에서 나선형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남한산성이 한눈에 보였고 사업단은 실물을 그대로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를 두고 나중에 실사단은 철저한 실사운영 준비에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현장실사에서는 헬기까지 동원했다. 육상에서는 남한산성의 12km에 달하는 성곽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남한산성의 옛 사진 전시회로 안내했다. 이 사진전은 주민들이 소장하고 있던 과거 수학여행 사진 등 산성과 관련한 옛 사진들을 공모를 통해 마련한 것이었다. 실사단에게 남한산성이 300년 가까이 대대로 주민이 살고 있는 산성도시라는 사실을 부각하려고 미리 기획한 전시였다.

주민들도 활약했다. 한 실사자가 준비된 일정을 갑자기 바꿔 산성 내 마을 전통인형 공방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 과거 도시였으니 전통문화를 확인하고 싶었을 터.

그러나 사실 인형공방은 주민 1명에 의해 운영되고 연중 열리는 곳도 아니었다. 사업단은 인형을 제작할 수 있는 아주머니 3명을 급히 수소문했고, 실사자는 한국 전통혼례를 형상화한 인형을 선물 받고 기념사진까지 찍으며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지자체와 민간이 큰 역할...등재 프로세싱의 새로운 모델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데는 지자체의 역할이 컸다.

경기도는 등재를 위해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폭적이었다. 경기도가 꾸린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국내 최초의 문화유산 민간관리기구다. 유네스코 등재 프로세싱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사업단 측은 “세계유산 등재 준비과정은 누구 한사람의 뛰어난 전문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며 “방대한 역사자료를 조사하고 세계유산적 가치를 새롭게 발굴해 조명하며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다는 유일의 비교가치와 유산의 진전성과 완전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유산의 활용사업과 중장기 보존계획을 내세워야 한다”며 “수많은 관련 기관과 전문가 그룹, 주민이 노력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등재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기에는 지역사회의 갈등도 있었다. 일부 상인이나 주민들은 상업 활동이나 재산권에 제약을 받을 것이란 등의 이유로 반대했으나, 위상이 높아져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협조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방문객은 등재 전인 2012년 180만여명에서 현재 330만여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등재 후 남한산성 관리 전담기구로 설립된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의 한승민 운영지원팀장은 “세계에 수많은 성곽이 있는데도 남한산성이 등재된 것은 다른 성곽에는 없는 특성을 부각시킨 전략이 주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김준형 기자

사진=고태헌 기자·울산매일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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