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중석 시인의 ‘정원에서’ 육필원고.  
 

정원에서

두 손을 뻗쳐들고 먼 하늘 내밀던 가지
물무늬 하나 없이 바람 속을 휘젓더니
한 송이 싱싱한 꽃을 낚아 올려 보이고

꽃잎을 창으로 열고 내다보는 눈이 있어
주름진 조약돌 곤한 잠에 빠져들고
바람만 혼자 나와서 가지 사일 누빌 때

기진한 짐승처럼 햇빛 아래 누운 연못
한 마리 소금쟁이 재빨리 달아나고
아득한 태초의 넋이 뒤척이는 물빛 속


●벌써 물이 차다. 이 차다는 말은 시나브로 잎들이 떨어져 바닥이 빤한 물속같이 드려다 보인다는 얘기다. 밤을 통해 울어대던 벌레들은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머잖아 잔잔히 주름졌던 못물뿐 아니라 세상사람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붙게 할 것이다. 삽상한 가을바람 앞에서 풀어진 옷자락의 단추를 채우며 나 자신, 혹은 내 주위를 둘러봄은 어떨까. 세월은 마냥 내 좋아라고 머뭇대지만은 않는다. 내일엔 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시조시인·서예가 노중석(盧中錫·1946년~ ). 경남 창녕 출생. 대구교육대학, 대구대학교,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석사). 1977년 민족시백일장 장원,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가작(單首片片),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庭園에서/가을). 시조집 《비사벌 詩抄》, 《하늘다람쥐》, 《꿈틀대는 적막》 등. 금복문화상(문학), 효원문화상(서예), 경상북도 초대작가상(서예), 이호우시조문학상 수상 외. 〈시조 21〉 편집위원.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 역임. 현재 한국서예협회 상임부이사장, 한국서협 경북지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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