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린 한 자동차전시회의 현대차홍보관.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마쓰다 스즈키 등 다양한 일본차 질주 
도요타 연합 공격으로 패권 노려 
일 언론 `한국차산업기반 붕괴중'냉소 

인력 40% 안줄이면 노사 공멸 
외부 자문위원회 현대차에 경고 
전기∙수소차 등 미래차 현대 미래좌우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 등 북서부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눈길을 끈 것은 도로위의 세계 각국 자동차 행렬이었다. 외국 여행 때 평소 습관처럼 챙겨보는 한국 자동차 점유율 궁금증은 이번 여행 때도 발동했다. 
놀라운 것은 약 50%가 일본차들이었다. 미국의 경우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다인종 사회가 넓게 분포된 캘리포니아 주 등 북서부 쪽에 특히 일본 자동차 점유율이 높다고 한다. 그 다음 약 30%가 포드, GM등 미국 자동차였다. 나머지 약 20%가 한국의 현대·기아차와 유럽의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메이커의 일본차들이 미국 대륙을 누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최대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 외에도 마쓰다, 스즈키, 스바루, 히노 등 중견차 메이커들이 상당수 미국 차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가운데 도요다 자동차는 최근 스바루, 마쓰다, 스즈키 등 중견 차 회사들에 잇따라 지분을 출자하며 품에 안고 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 그룹이나 르노·닛산 얼리이언스(르노 닛산 미쓰비시자동차 연합)를 제치고 세계1위로 올라서기 위한 전략으로 파악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덩치를 키우려는 의도가 보인다. 
당장 527만 대 규모의 일본 자동차시장에서 ‘범(汎) 도요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폭스바겐 그룹이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의 규모 싸움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선 일본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 도요타의 발길을 재촉했다. 
도요타는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스바루의 사륜 구동차 와 스즈키의 경차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견 업체들의 장점도 도요타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차 분야에 집중하여 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 스즈키는 도요타가 지니지 못한 강점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미국 시장에서 입지가 상당한 스바루는 도요타의 미국 시장 공략의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는 냉소적인 진단을 내렸다. 2000년대 초중반 ‘일본차 킬러’로 불리던 한국 자동차가 더 이상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지난해 한국차 생산대수가 402만대로 떨어져 차 산업 생태계 기반을 유지하는 ‘마지노선’인 연간 400만대에 근접한데다, 강성 노조 탓에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틀린 지적이 아니다. 현대 기아자동차의 국내생산량은 5년 전에 비해 5% 넘게 줄었다. 한국 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의 생산은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자동차 수요는 지난해 9월 이후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연산(年産) 400만대 붕괴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런데도 자동차업계의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노사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비효율적인 공장을 폐쇄하고 미래차 선점을 위한 투자와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국내 업계가 이 흐름에서 밀려나면 세계시장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인력의 40%를 감축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현대자동차 외부 자문위원이 최근 노사 양측에 내놓은 경고장이다. 친환경차로 자동차 산업이 급변하고 생산 공정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현대차도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내연기관 차량을 주로 생산해온 현대차는 그동안 변화를 거부하는 노조와 이를 추진하려는 사측이 대립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고용안정위원회가 구성돼 노사가 친환경차 대책을 함께 찾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 결과물로 현대자동차 노사는 오는 2025년까지 생산인력을 20%가량 감축하는 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산술적으로 현재 5만 명인 국내 생산 인력을 1만 명 가량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 노사 양측이 의견을 함께한 것이다. 고용안정위원회 구성 이후 노사는 인원 감축 규모를 놓고 대립해 왔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노조도 전기·수소차 생산에 따른 임원 감축을 받아들였다. 사측도 전기·수소차 생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필수 인원을 고려해 절충안을 찾았다. 
전기·수소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 없고, 내연기관에 비해 부품수도 줄어든다. 또 자동화와 모듈화가 이뤄져 생산 공정에 필요한 인력도 줄어든다.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달라질 여지는 있다. 노조는 20% 감축안을 ‘최대치’로 보았지만 사측은 20% 감축안을 ‘최소치’로 보기 때문이다. 또 노조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파워트레인 등 내연기관 핵심 부품을 담당하는 생산 인력은 감축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측은 전기·수소차 등의 전환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축의 대립 가능성은 남아있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내년 초 공식 출범할 새 노조 집행부에 현대차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울산 공장 내부에서는 노조까지 나서서 ‘위기’를 강조하는 상황에 반발하는 기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2년간의 미래차 생산 준비는 현대차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는 거대한 변화다. 노조 내부에서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에 맞춰 경쟁력과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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