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범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 모습.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조국이 온나라 뒤집어 놓을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던가 
용퇴의 시각 놓치니 망가지고 무너져 

분노와 분열만 남긴 `66일의 비상식' 
상식과 순리에 저항한 아집의 정치 
좌우로 갈린 민심봉합 아직은 미지수 

 

岐路(기로)는 갈림길이다. 이정표(里程標)가 없는 갈림길에 들어서면 누구나 망설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리 지도를 준비하고 예비지식을 쌓아 두었다면 목표 지점을 매우 빨리, 그리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揚子(양자)라면 전국시대의 대학자다. 하루는 이웃집 노인이 곧 새끼를 낳을 예정인 어미 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마치 보물이라도 잃은 것처럼 크게 상심해 친척과 친구를 총 동원해 양을 찾아 나섰다. 
이를 본 양자가 말했다. “고작 양 한 마리를 잃고 뭘 그렇게 야단법석이오?” 노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갈림길이 워낙 많아서…” 
한참을 지나자 양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다들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시 양자가 말했다. “아니 그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도 양 한 마리를 못 찾았단 말이오?” 
노인은 똑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갈림길이 너무 많아서…” 양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씁쓸했다. 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양 한 마리를 잃은 것과 선생님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렇게 상심하시는 것입니까?”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내가 상심하는 것은 노인이 양을 잃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길 저 길 다 돌아 다녔으니 말이야. 아무런 방향도 설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나서다 보면 양 잃은 노인의 꼴과 다름없게 된다 말이야” 
기로망양(岐路亡羊)의 고사다. 일을 할 때는 목적과 방향을 설정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갈림길에 서서 우왕좌왕하면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勇敢(용감)은 용기가 있어서 매사에 과감하게 임한다는 뜻이다. 無雙(무쌍)은 우리가 흔히 ‘~하기 짝이 없다’고 하는 한자어로 ‘똑 같은 사람은 없다’ 즉 ‘오직 하나’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용감무쌍(勇敢無雙)은 ‘용감하기 짝이 없다’이다. 
자기가 용감하였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제(齊)나라에 자기는 ‘용감무쌍’하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랑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길에서 마주쳤다. 서로 용감무쌍하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터라, 그 자리에서 과연 누가 더 용감한 사람인지 결판을 내야했다. 
둘은 우선 술로 결판을 내자고 했다. 한 잔 두 잔... 끝없이 마시다 보니 안주가 바닥이 났다. 이때 그 중 하나가 “어디 가서 고기 좀 사올까?”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대뜸 이렇게 대꾸했다. “고기를 사올 필요가 어디 있어? 자네 뼈에 붙어 있는 것도 고기이고 내 뼈에 붙어 있는 것도 고기인데. 그 걸 안주로 하고, 여기다 간장만 준비하면 되지” 
그는 칼을 뽑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몸에 살 한 점을 베어 간장에 찍어 먹었다. 이를 보고 있던 상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 점 두 점…. 결국 두 사람은 용감무쌍하게 죽고 말았다. 
降服(항복)의 원래 뜻은 ‘웃옷을 벗어 내려 사죄하다’이다. 이로부터 ‘적에게 굴복하다’는 뜻으로도 쓰이며, 이 경우에는 降伏(항복)으로도 쓴다. 옛날에는 잘못한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사죄 또는 사과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있었다. 즉 웃옷 자락을 걷어 내려 윗도리를 드러내고 엎드려 사죄했던 것이다. 조금 더한 경우는 윗도리를 드러내고 가시나무를 등에 져 자기의 잘못을 벌한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다. 더 심한 경우는 이마를 땅에 연달아 부딪치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보다 물러나는 것이 더 어렵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감성체인 사람은 수많은 욕망에 눈과 마음이 쉽게 어두워진다. 따라서 그런 욕망을 끊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러니 물러남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굳이 ‘勇退(용퇴)’라고 적었을 것이다. 
나아가고 물러남은 모든 싸움이나 다툼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모두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때를 맞추지 못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이름은 이름대로 무너진다. 이를 두고 ‘신패명렬(身敗名裂)’이라 했다. 용퇴의 시각을 놓치니 모든 것이 망가지고 무너졌다. 
분노와 분열을 남긴 ‘66일의 비상식’, 66일 만에 벗어난 ‘조국 블랙홀’, ‘조국불통 66일’, 조국 법무장관 사퇴를 표현한 신문 톱기사 제목들이다. 늦게라도 물러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온 국민을 쪼개고, 서로 싸우게 만든 것은 너무나 무책임 했다. 조국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을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던가. 
상식이 무너졌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가치체계가 혼란에 빠졌다. 국민의 상식과 순리에 저항하는 아집의 정치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에 큰 상처를 남긴다는 교훈을 남겼다. 
좌우로 갈린 민심이 봉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도 대응이 쉽지 않을 대내외 위기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분열과 대립의 길로 가면서 자해하고 있다.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고 보듬을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권이 모두 정권 차지에만 미쳐버리면 국정은 누가 책임지나.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가치, 자유와 공정과 올바름이 이긴다는 믿음은 누가 지켜주나. 여전히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 나라의 이정표는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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