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울산대 경찰학과 

  오늘은 창립 74주년 경찰의 날이다. 그간의 수많은 경찰관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이 정도로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을 되새기며 12만 경찰관과 그 가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경찰의 날’은 말 그대로 우리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창설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공(公)조직은 여러 계기마다 명칭과 지위, 역할 등이 달라지고, 직제 개편이나 분리-통합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기에 그 창설일을 특정하기가 용이하지가 않다.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우리 경찰조직은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대륙법계 모델과 영미법계 모델의 융합형에 가깝다. 즉 대륙법계 경찰의 ‘공공(公共)’과 영미법계 경찰의 ‘개인’을 아우르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청일전쟁 이후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이 노골화되던 시점에 일본은 그들이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였던 대륙법계 경찰모델을 조선에도 전파하였으며, 이 모델은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대륙법계 경찰이념의 핵심은 한마디로 국민 개개인의 권리보다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중시하는 것이다. 일제는 이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여 식민지 지배의 명분으로 악용하였으며, 경찰(경무총감부)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사상을 탄압하고 재산을 수탈해갔다.

  일본이 패망한 직후인 1945년,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군정을 실시하였다. 이때 미군정 당국은 기존 경찰의 이념인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유지는 하되, 거기에 영미법계 경찰의 정신인 ‘개인의 생명, 신체 및 재산 보호’를 가미시켰다. 또 일제의 각종 치안악법과 형사사법 관행들을 철폐하였다. 당시 초대 경무국장에 취임한 조병옥 박사는 경찰지표로 ‘봉사와 질서’를 채택하였다. 여기서 ‘질서’는 기존 대륙법계 경찰을 상징하는 것이고, ‘봉사’는 영미법계 경찰의 상징이다. 즉 1945년 10월 21일의 경무국 창설은 비록 미군정이라는 외세의 영향 하에 이루어지긴 했지만 일제의 전체주의적 경찰에서 탈피하여 ‘민주경찰’의 단계로 발돋움하게 된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우리 경찰의 뿌리를 다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즉 1945년의 경무국 창설은 미군정이라는 외세에 의존한 점 때문에 정통성에 문제가 있으니 자주적 경찰의 사례를 찾아 우리 경찰의 새로운 기원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것이 임시정부 산하의 경무국인 것 같다. 임시정부의 내무부장관이었던 안창호 선생은 초대 경무국장으로 김구 선생을 임명했는데 그 날이 바로 1919년 11월 5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조병옥 경무국’은 미군정에 의해 치안총수가 임명되었다는 점, 일제 잔재를 100% 청산하지는 못했다는 점 등에 있어 결함이 있었다. 한편,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점, ‘임정 경무국’이 항일투쟁정신을 바탕으로 자주적으로 창설된 점 등을 고려하면 최근 대두된 새로운 의견도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위와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병옥 경무국’은 과거 공안위주의 경찰시스템을 극복하고 ‘봉사(service)’라는 민주경찰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 보호’로 구체화되면서 오늘날 우리 경찰의 최우선적 임무이자 사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임정 경무국’을 우리 경찰의 뿌리로 보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내포한 자주성이나 민족적 자긍심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진다면 임시정부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포도청이나 고려시대의 삼별초도 우리 경찰의 뿌리로 별 손색이 없지 아니한가?

  또한 경찰조직은 사회 안전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며 범죄를 수사하는 기능이 핵심 사명이다. 그러나 ‘임정 경무국’은 물리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할 여건이 되지 못했고, 오직 감찰기능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임시정부의 궁극적, 최우선적 사명은 항일운동과 민족독립이었기에, 현대 민주경찰의 필수 요소인 ‘개인의 생명, 신체와 재산 보호’는 시기상조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경무국 창설은 역사적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드높이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나 오늘날 경찰의 뿌리라고 보기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최근 경찰청에서는 소위 ‘경찰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경찰의 뿌리와 기원을 임시정부에서 찾으려는 노력과 이에 대한 홍보활동이 한창인 듯하다. 경찰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이러한 분위기를 대번에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분위기라면 조만간 경찰의 날이 10월 21일에서 11월 5일로 바뀔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일단 경찰의 날을 바꾼 이후에는 경찰의 핵심 가치와 사명에도 변화가 있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다신 한번 강조하건대, 임시정부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계승한 것이다. 우리 경찰도 같이 이어받았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만약 경찰청이 스스로 임시정부 계승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 경찰의 날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면 부디 재고를 바란다. 경찰은 외세에 항거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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