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7일 심야, 내가 끌려갔을 때는 높은 담이 사방을 에워싸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컴컴한 밤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M16을 든 군인들이 한 밤에 몰려와 어딘지 모를 곳에 나를 붙들어 갈 때 나는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국회 다수당의 총재를 영장도 없이 무력으로 협박하는 권력 찬탈이 진행되고 있다. 그 우두머리는 필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일 것이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 그 시절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간첩 혐의자를 조사하는 곳이었다. 대통령이 지시한 특명 사항을 수사하기도 했는데 공식 이름은 국군 보안사 대공처 수사단이었다. 
1979년 10·26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12·12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조사했다. 70~80년대 ‘빙고 호텔’이란 별명으로 불렸는데, 고문과 공포수사의 상징이 됐다. 90년 이곳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을 계기로 폐쇄됐다. 국군 보안사는 91년 국군기무사로 이름을 바꿨다.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리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야 공방전이 사생결단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정(司正) 기구를 새로 만들겠다면 도입에 따른 장점은 물론 부작용까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검찰이 쥐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 등 비대한 권한을 분산하고 중립성을 강화해 검찰 조직을 정상화하자는 것이 검찰 개혁의 취지다. 그런데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권력기관을 하나 더 만들어 검찰을 견제한다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을 넘어 부작용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과 공수처가 수사 경쟁을 벌인다면 그 혼란은 누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정권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방화벽을 확실하게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기관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다시 없애기도, 고치기도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파 간 경쟁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군사독재 시절 ‘빙고호텔’의 악명을 떠올리게 하는 무소불위의 수사기관 탄생을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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