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전하초등학교 교표. 교육희망 울산학부모회 제공.  
 
   
 
  ▲ 교육희망울산학부모회는 22일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시 학교상징으로 본 일제잔재 및 성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성만 기자  
 

울산지역 초·중·고교 내 여전히 일제 잔재가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떠올리게 하는 교표, ‘친일’ 인사가 노랫말을 지은 교가 등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 학교상징 속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 여성으로서 곱고, 아름다운 심성’ ‘순결 검소 예절바른 한국 여성 본이라네’ 등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조하는 교가 등 성차별이 우려되는 학교상징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희망 울산학부모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울산시 학교상징으로 본 일제잔재·성차별 실태 조사’ 결과를 22일 오전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올해 9월 한 달간 울산지역 초·중·고교 243곳(초 119, 중 63, 고 57, 특수 4)을 대상으로 교화, 교목, 교가(가사 및 작사·작곡가), 교표(학교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 캐릭터 등을 점검했다.

#아이들 곁의 일제 잔재들=울산지역 3개 초등학교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자 자위대 군기인 ‘욱일승천기’를 연상하게 하는 교표를 사용 중이었다. 이중 전하초는 교표를 변경키로 결정했다.
일제 잔재는 교목·교화에서 더욱 많이 발견됐다.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를 알리기 위해 순행하며 대구 달성공원에 처음 심은 기념식수로 알려진 ‘가이즈카향나무’가 교목인 학교 30곳, 일본 왕실과 욱일기의 붉은 줄을 상징하는 '국화'가 교화인 학교가 12곳, 일본 문학과 예술에서 가끔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벚꽃·벚나무'가 교화와 교목인 학교 4곳,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 퍼진 대표적 수종인 '히말라야시다(설송)'가 교목인 학교가 2곳이었다.
이와 함께 일부 학교에서는 울산 출신 친일 인사가 만든 교가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사 박관수가 작사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는 2곳, 정인섭 작사의 교가를 사용 중인 학교 1곳 등 총 3곳이었다.
교육희망 울산학부모회에 따르면 1897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박관수는 1922년 도쿄 제국대학 철학과를 수료한 후 1939년 조선총독부 교학연구소 강사, 1944년 춘천공립중 교장을 재직하면서 전쟁협력 글을 여러 편 발표하는 등 교육학술 분야에서 친일 행적을 남겼다. 1905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정인섭은 조선문인보국회 발기인 및 간사를 역임했고,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주최 내선작가문예좌담회에 참석해 의견을 교환하는 등 수많은 친일 글을 남긴 문학평론가이자 아동문학가다.

#‘고운’ 여성, ‘강인한’ 남성=성인지적 관점으로 분석한 결과, 울산의 한 여자고등학교는 교표에 여성을 강조하는 한자 女(여자 여)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여고는 교육목표에 ‘한국 여성으로서 곱고, 아름다운 심성을 연마하여’라는 문구를 넣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조했다.
또 ‘치맛자락 사뿐 잡고’ ‘학처럼 우아하게 솔처럼 꼿꼿하게 순결 검소 예절 바른 한국 여성 본이라네’ ‘색실로 수를 놓아라’ ‘착하고 예의 바른 딸들이 모여’ 등 5곳의 여중·여고가 교가에 여성성을 강조하는 표현을 넣었다.
이와 반대로 남성 편향적인 단어인 ‘건아’ ‘형아’ ‘소년’ 등이 들어간 교가를 부르는 학교들도 12곳에 달했다.
아울러 학교 14곳은 학교 캐릭터에 치마와 분홍색, 꽃봉오리, 긴 속눈썹과 머리 등의 여성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남성성을 강조한 이미지를 활용해 성 역할을 고정화하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공장 연기 치솟는 공업의 도시’ ‘대한의 어린 용사들’ 등 시대에 맞지 않는 교가 가사도 있었다.
교육희망 울산학부모회는 “학생들의 배움터인 학교 안에서 일제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역사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으로 이번 조사를 실시했다”며 “성차별적인 내용을 그대로 두는 것도 학생들에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래 세대의 공간에 역사의 그늘이 드리우거나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주입되지 않도록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과 교육청의 노력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울산교육청은 “올해부터 일제잔재 청산 TF팀을 구성하는 등 문제 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교육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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