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도서관의 지역 인문학 프로그램.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전국서 열린 `2019인문 주간' 행사 
울산에선 조용히 지나가 

공업화에 따른 불균형도시 울산 
자연과 소통, 상생의 도시되려면 
인문학이 유익한 처방 될 수 있다는 생각
 

김병길 주필

2019년 인문주간 행사가 10월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전국 39개 기관에서 다채롭게 진행됐다. 아쉽게도 울산에서는 이 기간 조용히 지나갔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인문학을 통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 올 인문주간의 주제였다. 인문주간은 그동안 대학에만 머물렀던 인문학을 국민들이 일상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는 화해와 상생을 통해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고,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인문학으로 따뜻한 위로와 안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인문학의 가치와 역할을 꾀한다는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다. 
인문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변회 시켜 나감에 있다. 따라서 인문학을 통해 단순히 고전의 지식을 이해하고 깨달아, 그 깨달음의 기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깨달음은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 자신의 삶을 변화 시켜 나가는 동인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비 인간화 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점점 인간적인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 운동이 번져 나가면 나갈수록 인간다운 삶의 양상이 우리사회의 주류로 형성되어야 한다. 
한국을 대표해 왔던 교양잡지 월간 ‘샘터’가 올 12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休刊)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년 창간 50주년을 목전에 두고 사실상 ‘폐간’과 다름없는 결정이어서 국내 출판 잡지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이었던 지난 1965년 국제 기능올림픽대회 준비를 맡았던 것이 동기가 돼 창간했다. 김 전 의장은 기능올림픽 선수들을 만나봤더니 신바람 나서 일해야 할 이들이 하나같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다. 이들에게 용기와 보람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잡지를 만들게 됐다. 그는 교양 잡지를 통해 인문학의 실천에 나섰다. 
국내에서 오래된 잡지들이 무기한 휴간 또는 폐간되고 있다. 월간 ‘샘터’의 경우 1970년대 중반엔 광고가 없어도 50만부까지 발행했는데 최근엔 월 2만부를 채 팔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월간 ‘샘터’는 휴간하지만 단행본은 계속 출간한다. 그간 잡지 적자를 단행본 수익으로 메워왔다. 그러나 단행본 시장도 나빠지면서 매년 매출이 전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종이신문이나 출판의 활자문명 시대는 분명 저물었다. 인문학의 주류를 구가해 온 활자 문화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 
더불어 도시화와 인문학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신(神)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던 장 자크 루소(1712~78)는 “도시는 인류가 뱉어낸 가래침”이라고 했다. 
쿠퍼는 “그는 시골을 좋아한다. 그런데 실은 그가 시골이 가장 좋아지는 것은 도시에서 시골에 관해 배우고 있을 때”라고 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는 도시를 ‘사회의 도서관’으로 간주했다. 세계에서 도시화가 가장 빠른 시간에 압축적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특히 서울 인구는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며 권력과 부의 집중도 가속화됐다. 
50년대에 도시화의 서울 집중이 가속화되는 데는 정치 경제적인 이유가 컸지만 심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도시화의 질주는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계속돼 오늘날 한국의 도시화율은 90%에 육박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도시화율이 75%를 정점으로 해서 둔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의 도시화 수준은 매머드 급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한국의 성공적 근대화도 알고 보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격한 도시화 덕분이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특성을 가늠해 보는 방식 중에서 ‘도시’란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의미있 는 일이다. 
민주화는 역사적으로 도시화의 산물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부를 축적한 도시의 시민들이 민주화도 아울러 요구한 것이 서구 민주주의의 발단이었다. 이런 도시화의 역사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커뮤니케이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인 까닭에 시위의 동기를 시민들에게 일시에 알릴 수 있고 또한 시위를 순식간에 조직할 수 있었다. 월드컵 열기나 각종 촛불 집회를 보더라도 대규모 인파가 뿜어내는 파워는 구경꾼의 기(氣)를 질리게 한다. 그 만큼 선동에 놀아날 위험이 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밀도 인구 집중 상태가 야기하는 문제를 사회 심리학적 차원에서 고찰해 볼 때에 비로소 한국 특유의 ‘쏠림 문화’ ‘빨리빨리 문화’의 정체를 규명할 수 있다. 도시환경 자체가 인성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각박하게 목숨 걸고 경쟁하는 모습은 곧 오늘의 도시 모습이다. 
울산이라는 도시, 공업화에 찌든 불균형의 모습을 자연과 소통으로 바꾸려면, 화해와 상생의 도시로 바꾸려면 인문학이 유익한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빠르게 변하는 첨단시대에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가을, 인문학을 즐기는 울산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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