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은 썩거나 탁해지기가 쉽다. 연못이나 수족관의 물고기를 늘 싱싱하게 키우려면 조금씩 묵은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넣어 주어야 싱싱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조선사회가 그처럼 탈 난 것은 흔히 당쟁 때문이라고 돌린다. 하나 당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벼슬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후보자 수는 늘어만 갔다. 
따라서 벼슬을 따내려면 남을 모함하고 짓눌러야 했다. 그렇다고 이 때문에만 조선사회가 정체된 게 아니었다. 한 번 권세 자리에서 물러나면, 언제 또다시 자신이나 자기 가문이 득세할지 몰랐다. 그래서 자기네끼리 벼슬자리를 꼭 움켜쥔 채 돌려가며 맡았다. 썩기 쉬운 괸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영국은 달랐다. 아무리 명문가라도 큰 아들만이 귀족이 될 수 있었다. 둘째 아들부터는 자수성가에 나서야만 했다. 이래서 영국은 활기 넘치는 사회가 이어질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높은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자칫 그 훌륭한 뜻을 잃게 되기 쉽다. 벼슬이란 명예 때문에, 또는 욕망이나 보신(保身) 때문에, 혹은 세평(世評) 때문에 반갑지 않은 일을 저지르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란 말도 있다. 한 분야에서 오를 대로 올라가고 명예를 누릴 대로 다 누린 다음에는 툭툭 털고 물러나는 사람은 더욱 돋보인다. 후진에게 길을 터주기는 물론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다. 
‘국회의원 물갈이’가 이슈가 되면서 영화 ‘친구’의 대사가 회자되고 있다. “니가 가라 하와이” 말고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많이 먹지 않았느냐. 그만해라)” 18년 전 영화 대사가 국회 다선 의원들을 가시방석으로 몰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나 만큼 경쟁력 있는 인물이 있느냐”며 꿈쩍도 안한다.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10년 넘게 의원 배지를 달면서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여의도의 오랜 정설이다. 세간의 관심은 어느 당이 먼저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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