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진세무법인 충정 울산지사 대표세무사

양심불량 고액체납자 뻔뻔하고도 어처구니없는 행태 ‘허탈’
납부한 세금조차 올바로 쓰이지 않으면 조세 저항 심리 꿈틀
꼬박꼬박 유리알 세금 내는 직장인들 기 더이상 꺽지 말아야

해마다 이 맘 때면 조세정의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지자체마다 지방세 고액·상습 체납자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홈페이지에는 속칭 ‘악질 세꾸라지’의 명단이 공개되고 일제 정리기간을 정해 납부이행을 촉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게다가 특별 체납 관리단이 출장 징수, 차량번호판 영치, 관허사업 제한 등의 조치를 내리거나 출국 금지, 가택수색, 직장급여 및 금융재산의 압류·추심 등의 행정제재를 병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늘 체납액은 줄지 않고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말이다. 실제 울산시의 경우 조선업종 등 지역 주력산업 침체 탓에 지방세 고액체납자수는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울산시가 공개한 2019년 지방세 고액·상습 체납자는 270명으로 지난해 129명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개인은 184명 77억원(69.4%), 법인은 86개 업체 34억원(30.6%)이다. 5,000만원 미만 체납자가 225명(83.3%)으로 가장 많고, 이어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 체납자 28명(10.4%), 1억원 초과 체납자 17명(6.3%)으로 조사됐다. 그렇잖아도 세수부족으로 걱정이 큰데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경기 침체로 인한 부도, 폐업 등 어쩔 수 없는 사유로 체납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액 체납자로 공개된 사람들의 뻔뻔하고도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면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는 수단도 점점 더 교묘해 지고 있단다. 한마디로 양심 불량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대다수 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자칫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세금을 내지 않고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아예 못하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세금 폭탄’ 때문에 또 죽을 맛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세 부담이 너무 가혹할 정도로 큰 경우인데 세금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줘 걱정이 앞선다. 우리 역사속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세제도의 기본은 조용조(租庸調) 체계였다. 조(租)는 토지에 붙는 세금으로 곡물을 부과한 것이고, 용(庸)은 사람을 대상으로 노동력을 부과한 것이다. 또한 조(調)는 지역 등을 대상으로 특산물을 부과한 공납(貢納)이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조(調)였다. 처음엔 지방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친다는 소박한 충성개념에서 시작됐지만 조선 후기 들어 국가 세수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세원(稅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짓수도 점점 많아지게 되고, 부과 시기도 수시로 변질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납세자의 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는 점이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호(家戶) 단위로 부과하다 보니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소작농이나 하루 종일 걸어도 남의 땅 밟지 않는 양반 부호나 그 액수가 비슷했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백성들은 도망가거나 임란 때 일본군에 대거 가담하는 등 반작용이 생기면서 국가 존립의 근원을 뒤흔들었다. 
누구든 세 부담이 커지면 거부반응이 생기게 마련이다.  질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남들에 비해 세 부담이 늘어난다면 당장 ‘불공정하다’고 항의를 하거나 심한 반발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내가 노력해서 납부한 세금이 엉뚱한 데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참을성이 한계에 이른다. 가뜩이나 세금이 올라 화가 치미는데 납부한 세금조차 올바로 쓰이지 않는다면 조세저항 심리가 꿈틀 거리게 마련이다. 조세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욱이 꼬박꼬박 ‘유리알 세금’을 내는 직장인들의 기를 더 이상 꺾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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