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지난해 돌아보며 올해는 “가슴 따뜻한 사람 되겠다” 다짐
‘위로·배려·격려·나눔’ 소중하고 세상에 꼭 있어야 할 것들
모두 가슴 깊이 따뜻하고 환한 사랑이 스며드는 한해 되길

나와 가족들을 위해 운동하기, 늘 바른 생각으로 사람답게 살기, 책 좀 읽기, 뭐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또 어김없이,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은지도 여러 날이 흘렀다. 그러며 그래도 새해는 늘 특별하니까, 슬쩍 약하게 새로운 다짐들을 주섬주섬 새해 냄새가 나는 플래너 첫 장에 새겨넣었다. 그런데 데자뷰라는 게 이런 것인지, 어쩐지 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써 내려갔던 것 같아 픽, 웃음이 나왔다. 살다 보면 후회는 늦고 다짐은 늘 앞선다. 무너지기 전에 그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꼭 그 시간이 흐른 뒤에야 ‘... 했을 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올 한 해는 늘 그렇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지난 한 해 내가 했던 행동들과 말들이 가족들에게, 학생들에게, 남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고 이유 없이 감정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후회하면서도 같은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었다. 
예전에 종영과 함께 긴 여운을 남겼던,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졌던, 나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다시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그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팔 할이 가족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인 골목 안 이웃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아저씨’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지만 어쩌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이 작은 위로와 응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착하다”, “존경합니다”, “용감하다”, “고맙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같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가 빛이 난건 거기엔 비록 빛나진 않지만 투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 배려가 있어서, 그래서 참 뭉클하고 따뜻한 그런 드라마였다.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 카세트 라디오에 더블데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정말 오래된 일이다. 요즘처럼 CD도 아니고 MP3도 아닌, 그때 우리는 가운데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는 테이프를 카세트 라디오에 넣어 노래를 들었다) 두 개의 테이프를 연달아 듣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더블데크의 진짜 매력은 친구들에게 노래를 녹음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요즘처럼 쉽게 노래를 다운받는 것이 아니고 일일이 공테이프에 노래 한 곡 한 곡씩을 녹음해 친구들에게, 연인에게 선물을 하곤 하던 시절이었다) 둘 중 하나를 다른 사람을 위해 쓴다는 것이었다. 
살아갈수록 위로와 배려, 격려, 나눔, 이러한 것들이 인생의 참 소중하고 세상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위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 서로에게 괜찮다며 아무 일도 아니라며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손을 내밀어 주는, 넌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끝까지 봐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어른이 되어 주길 데자뷰처럼 올해도 여전히 나에게 다짐해 본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시 한 편을 낭송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들고 와 낭송했던 시가 있었다. 
꽃게가 간장 속에 /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 어찌할 수 없어서 /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 한때의 어스름을 /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모두에게 가슴 깊이 따뜻하고 환한, 그런 사랑이 스며드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아닌 누군가를 보살피며 그 사람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쓰는 일은 정말,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진짜 사랑은 아마도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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