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고 공항검색대를 지나가는 승객들. 연합뉴스

 우한(武漢)폐렴 → 신종 코로나 → 
`코로나19 감염증' 세번 바뀐 병명
 그 사이 이웃 대구지역까지 침투 

`죽음의 안개' 뿌려진 것 처럼 
 거리는 썰렁, 곳곳 행사 잇따라 취소 
 지혜롭게 극복 못하면 모두에게 상처 
 

김병길 주필

 

글로벌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가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비수도권 첫 동부산점(국내 4호점)을 개점했다. 13일 개점때에는 2000여명 이상의 쇼핑객이 몰렸는가 하면 주말인 14~16일에도 수 천 명이 몰려들어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장감을 무색케 했다. 쇼핑객들은 1만여 품목에 이르는 방대한 가구 제품과 인테리어 소품, 홈퍼니싱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쇼핑을 즐기는데 열중해 ‘코로나 19’ 이변을 보여줬다. 
발병 한 달여 만에 우한(武漢)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등으로 병명이 바뀐 가운데 드디어 국내 ‘지역사회 감염’을 위협하고 있다. 
‘관상동맥’이라고 할 때 관상(冠狀)은 ‘왕관모양’이라는 뜻이다. 심장을 둘러싼 혈관이 왕관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인 코로나(Corona)의 형용사를 써서 ‘Corona artery’라고 한다. 
1970년대 국내에서 조립한 자동차 중에 ‘코로나’라는 이름의 승용차를 기억할 수도 있다. 전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코로나’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으로는 ‘신형관상병독(新型冠狀病毒)’이라고 한다. 바이러스 입자가 마치 왕관처럼 뾰족한 돌기들을 가진 것 같아 보인다고 그렇게 불리게 됐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2년 메르스(MA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원인도 각기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12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공식명칭을 ‘코비드-19(covid-19)’로 정했다. 코비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이라는 뜻으로 코로나(‘co’rona), 바이러스(‘Vi’rus), 그리고 병을 뜻하는 ‘D’isase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19는 발생년도인 2019년을 뜻한다. 
우한 코로나가 올 들어 확산되기는 했지만 WHO에 이병이 처음 공지된 날이 2019년 12월31일이기 때문에 발생연도는 2019년이다. 우리 정부는 국내 명칭을 ‘코로나19’로 부르기로 했다. 
17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흑사병 의사들은 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외투를 입었다. 흑사병에 감염된 쥐를 문 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던 당시에는 공기로 전염된다고 지레 짐작하고 차단에만 신경을 썼다. 이들의 치료법이라곤 환자 정맥의 피를 뽑는 게 고작이었다. 흑사병 공포에 짓눌렸던 무지의 시대에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 감염증 전파 속도만큼 빠르게 반중(反中) 감정 역시 확산되는 모습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은 66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일본 트위터에선 ‘#중국인은 일본에 오지마라’는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었다. 홍콩과 베트남 상점에선 ‘중국인 출입금지’ 푯말까지 나붙었다. 감염 공포가 커지다보니 바이러스 대신 중국인 상대로 분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은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황색경보(Yellow Alert)’라는 제목을 올렸다. 청일전쟁 말기에 독일 황제가 내세운 황화론(黃禍論)을 떠올리게 한다. 황색인종이 부흥하면 백인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양인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는 명백한 인종 차별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포감을 조장하는 못된 행태에는 무지한 이들의 선동이 공통 법칙이다. 
‘코로나19 감염증’으로 거리는 썰렁하고, 곳곳에서 행사는 취소되며, 학교는 문을 닫고 있다. 유행하는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시민들이 각자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밀접 접촉자가 아닌 한 거의 감염되지 않는데다 중국을 제외하면 치사율도 낮다. 
하지만 죽음의 안개가 뿌려진 것처럼 우리사회 전체가 과도하게 예민하다. 사회적 패닉을 일으킬 정도로 몰아붙인 건 감염병 외에도 쏟아지는 관심과 비난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았을 뿐인데, 병이 걸리는 순간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으며, 누구와 만났는지가 온 국민 앞에 빠짐없이 노출된다. 
다니던 직장은 일을 멈추고, 들렀던 가게와 식당은 문을 닫고, 만났던 지인들은 격리된다. 뿐만아니라 온라인에 넘쳐나는 혐오를 보라. 아프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이 심리적 공포가 사회적 패닉의 진짜 원인일 것이다. 
감염병 환자는 실패자가 아니다. 아플 기미가 있으면 먼저 배려되고, 아프면 응원 받아야 한다. 환자를 죄인으로 대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여야 감염병 패닉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감염경로가 뚜렷하지 않은 이른바 ‘29번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사고수습본부 확대회의를 열고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지역 사회의 전파 단계에 들어섰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기존 대책을 한 단계씩 상향했다. 닷새 만에 발생한 신규 확진자 29번 환자의 아내인 30번 환자까지 확진자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우리 방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성공적이다. 그러나 중국으로 향한 대문이 활짝 열려있어 언제 사태가 악화될지 알 수 없다. 그 사이 이웃 대구지역에서 잇따라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해마다 발생하는 토착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비난 받더라도 과잉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쓴 일상이 오래 갈수록 공포와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과도해지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은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를 잘 이겨낼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면 모두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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