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전쟁·질병 해결 등 화학 녹색기술 중요성 확대 중
울산경제뿐 아니라 핵심 신소재 개발·제공과 직결돼
화학의 날 연기됐지만 모든 화학산업인의 노고에 감사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어느새 봄은 우리 곁에 서 있다. 단지 집이나 직장에 콕 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서 몰랐을 뿐이다. 올해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한꺼번에 다가온 느낌이다. 매화를 필두로 동백,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동시에 피면서 눈길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게 만든다. 곧 벚꽃도 만개할텐데 국민의 답답한 마음이 얼마나 풀어질지 의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최근 가장 바쁜 국책연구기관이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이다.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은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하면 대부분 의약바이오나 화학소재에 관련된다. 그러면 화학硏 전화통은 불이 날 지경이다. 얼마 전부터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 빠져들었다. 1948년 WHO(세계보건기구)가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이번의 2020년 코로나19 등 단 세 차례뿐이다. 그만큼 위력이 대단하다. 화학硏은 신속진단기술 및 백신개발에 나섰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숙한 국민의식으로 인해 일단 진정세라지만 한층 조심해야 한다. 살짝 느슨해진 문틈 사이로도 널리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철저한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작년 7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와 백색국가(White list) 제외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친일(親日)과 항일(抗日), 게다가 죽창까지 외치며 온 국민이 양편으로 나뉘어 싸움박질에 몰두했다. 결국 극일(克日)만이 정답인데도. 가깝지만 얄밉고 먼 이웃나라 일본이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3가지는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 있어 필수적인 핵심소재다. 플루오린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그리고 에칭가스는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그 점을 십분 이용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8월에는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참으로 암울했다. 피가 끓어올랐다. 한국을 비롯하여 독자적인 원천기술이 없는 세계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일본에서 핵심소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 아닌가. 그래서 화학硏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핵심소재 원천기술 확보에 앞장섰다. 어느 정도 시간만 지나면 대등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기업경쟁력을 키우는 산업생태계 조성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기업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못내 아쉽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기후변화 문제에 잘 대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기 때문이다.

3월 22일은 ‘울산 화학의 날’이었다. 일요일과 겹쳐 20일에 기념식과 화학네트워크포럼 등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부득불 연기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나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이 이를 해결해야 하는 몫은 오롯이 화학 녹색기술이다. 앞으로 갈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 자명하다. 화학산업은 울산경제의 든든한 주력산업 역할뿐만 아니라 미래산업의 핵심 신소재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를 비롯하여 로봇, 드론, 3D 프린터 등 4차 산업협명의 핵심기술은 모두 화학소재 개발과 직결된다. 바이오신약 개발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금년에도 RUPI사업단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 통합 파이프랙을 비롯한 울산 국가산단의 완벽한 안전체계 구축 사업과 용연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이용한 공업용수 통합공급시설(통합 물공장) 건립 사업이다. 특히 통합 물공장은 담당부서에서 처리가 늦어져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부서 간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하기 좋은 산업생태계 조성은 지자체도 해당된다. 어쩌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화학의 날’은 연기됐으나, 이 시간에도 산업현장이나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화학산업인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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