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잡이라 왼쪽은 덜 일한다 생각했지만
양쪽 균형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일 하고 있어
삶도 협동해야만 가능한 일 많다는걸 깨달아

임일태 수필가

가끔 왼쪽 팔이 아팠다가 왼쪽 다리가 아프기를 번갈아 한다. 식사도 오른손으로만 하고, 삽질도 낫질도 공차기도 공 던지기도 제기차기도 닭싸움도 모두 오른쪽으로만 하는 나는 오른쪽 잡이다. 그렇다고 오른쪽이 왼쪽에게 불평을 한 것도 아닌데 왼쪽만 아프니 그저 애처롭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

텃밭에 농사를 지은 지 십년이 다돼 가는데 매년 되풀이 되는 현상을 보면서 궁금해 졌다. 오른쪽과 왼쪽은 부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좌우간, 내외간, 이런 관계는 대칭적인지, 보완적인지 아니면 협동적인 관계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결혼반지를 맞추러 갔을 때 오른손과 왼손 손가락의 굵기가 차이가 나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많이 쓰는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두세 치수는 더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몸도 좌우가 대칭인 듯 보이지만 자세하게 측정해보면 많이 쓰는 쪽이 적게 쓰는 쪽 보다 발달돼 있어 크다고 했다.

농촌생활에서 삽질과 낫질을 많이 하는데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덜 발달돼있어 왼쪽만 아픈 것이라고 여겼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기다렸지만 십년이 흘러도 변화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기법을 적용해보려고 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천천히 보며 삽질과 낫질의 동작분석과 시간분석을 해보았다.

삽질, 몸무게를 실어서 삽날을 누르려고 오른발을 드는 순간에도 왼발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왼발은 몸무게를 고스란히 떠안고 균형을 잡는 일은 혼자 감당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른발이 삽을 누르고 난 후 균형을 잃었을 때도 묵묵하게 버텨 본래의 자세를 복원 시키는 것도 왼발이 한다. 오른발이 삽에 가하는 힘과 왼발이 균형을 잡기위해 버티는 힘의 양은 정확하게 같다. 바닥이 평평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균형 유지가 쉽지만 흙 파기가 계속될수록 바닥이 고르지 못해 균형을 잡는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그 것까지도 왼발의 부담이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에도 차이가 난다. 오른발이 몸무게의 힘으로 삽을 누르는 시간보다 왼발이 같은 무게를 감당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시간이 배로 길다. 왼발은 오른발 보다 배로 많은 일한다. 오른발이 한 시간 일하는 동안 왼발은 두 시간을 일하는 구조다.

흙을 퍼서는 양손으로 들어올린다. 오른손은 삽자루의 중간 부분을 잡고 왼손은 삽자루의 끝 부분을 잡는다. 오른손이 삽자루의 중간부분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릴 때 왼손은 자루의 끝부분을 아래로 밀어줘야 한다. 드는 힘과 미는 힘의 양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방향을 조절해 원하는 곳에 흙을 옮기는 일은 왼손의 몫이다. 삽질은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왼발이 균형을 잡아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은 삽질뿐만이 아니다. 제기차기와 닭싸움도 오른쪽으로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일하는 내내 몸무게를 홀로 지고 균형을 잡는 것이 왼발이 아닌가. 왼쪽이 한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 같다.

낫질을 하는 동영상을 천천히 돌려 동작과 시간을 분석 해본다. 낫으로 농작물을 베는 동작에서 오른손은 낫을 잡고 앞으로 당기고 왼손은 끌어안을 준비와 뒤처리를 한다. 작업시간 내내 오른손은 낫 하나만 들고 있을 뿐이지만 왼손은 힘이 닿는데 까지 베어진 작물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이 작업에서도 왼손은 낫보다 몇 배 무거운 작물을 들고 있다. 양손의 협조 없이는, 특히 왼손의 희생 없이는 낫질은 불가능하다. 평범한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 수가 있다. 왼쪽만 아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삶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협동해야만 가능한 일이 삽질과 낫질 같은 농사뿐이겠는가. 삽질을 하면서 내가 가정이란 흙을 파서 옮기는 동안 몸 전체를 떠받들었듯 가사와 육아란 무게를 짊어지고 균형을 유지한 것은 아내였다. 내가 가족을 위해 낫질을 하는 동안 아내가 희생하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한 톨이 곡식인들 수확했을까.
요즘 들어 아내가 부쩍 피곤해 하고 있다. 농사일을 하는 십년 동안 왼쪽만 아팠던 것은 세상의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고, 가정에서 가사 노동의 크기를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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