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확산 방지 목적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요하나
마음의 거리 부추기는 주민자치위원회 통제는 안돼
진정한 지방자치 위해서라도 실체적 관계 보장 해주길

 

최범영 울산 남구 삼산동자치위원장

전 세계가 혼란 그 자체다. 코로나 19 탓이다. 무방비 상태로 겪는 충격과 고통 및 생활불편은 과히 메가톤급이다. 엄청난 인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손실이 상상을 초월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예방수칙 실천뿐이다.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인데 결국 집안에 가만히 머무르는 게 최선책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고립과 단절에 따른 피로감과 무기력이 자리 잡는 듯하다. 마냥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엔 너무 갑갑해 속이 터질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잇따른다.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봄꽃의 향연이 손짓을 하고 따사로운 햇빛이 유혹하고 있어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사이의 행동까지 어떻게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이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 있겠다 싶다.

불현 듯 ‘각자도생(各自逃生)’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스스로 살아날 방도를 찾자’는 좋은 의미지만 때론 마치 ‘나만 잘되게 해 달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병 예방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마음의 거리’를 멀게 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보는 이유다.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과 동료, 선후배, 특히 가족들의 지원과 사랑은 큰 힘이 된다. 이들과의 ‘마음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와는 다르게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에너지가 솟고 삶의 의미도 커지는 법이다. 물론 비상시국에서는 절제와 양보, 희생이 요구되고, 그 부작용은 최소화에 그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주민자치위원회를 맡아 일하면서 가끔씩 느낀 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음의 거리’ 뒤에 숨어있는 이기적 행태가 늘 편협한 사고를 부추기면서 상호 협력과 연대에 금이 가게 만든다. 이는 유의미한 일을 하는데 곧잘 방해꾼으로 자리 잡곤 한다.

알다시피 주민자치위원회의 설치 목적은 진정한 지방자치와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지역문제의 자발적 해결과 지역공동체 육성 등을 통해 주민과 함께하는 행정서비스의 생산과 공급에 힘을 보태 보다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다. 따라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우선적으로 담보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자치위원회가 자율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틈만 나면 지방자치단체를 위한 관치화(官治化) 기구로 변질되는 것 같아서다. 지자체의 하향식 행정이 대표적이다. 동 행정으로 전달된 주민자치 정책은 각 동장들의 인식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행여 동장과 미묘한 갈등이라도 보이면 권한다툼의 모습으로 비취지기 십상이다.

더욱이 주민자치위원 구성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교묘한 개입이 횡행되고 있는 점도 안타깝다. 실제 지자체장들의 자기세력화 의도가 감지될 때면 자괴감마저 들곤 한다. 아무리 지자체가 주민자치력 향상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행태가 되풀이 되면 주민자치는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주민자치는 형식적인 겉옷에 불과하고 알맹이는 동정자문위원과 유사한 수동적 조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는 주민의 주체적 참여와 실천에 기반 한다. 주민자치위원회가 더 이상 통제대상이 아닌 행정협력의 파트너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와 행정, 자치위원간, 그리고 주민과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는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고, 더불어 실체적 관계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민자치위원회도 위원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역공동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생력 강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다. 우리는 한 일 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후회한다고. 또한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네 명 중 세 명이 어떤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고 기회가 있을 때 놓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낼지라도 지금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배려와 봉사, 고통분담 등 ‘마음의 거리 좁히기’에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우리 자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