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상세검색

상세검색

 
검색기간

  ~  
섹션별
검색영역
콘텐츠 범위
검색어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문화산책
한민족의 산악문화는 ‘산에 들어감’이다
15면 기사보기 신문보기 JPG / PDF
  •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18 22:30
  • 댓글 0
뉴스NOW
열기/닫기
닫기 뉴스NOW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많은 것 내어주는 어머니의 품·신앙의 대상·성지 ‘산’ 
오르거나 정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안식 취하는 쉼터’
보호하는 것이 윤리…오물·쓰레기로 더럽히면 안돼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낮이면 밭에 나가 길 쌈을 매고/낮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우리나라 근대 가요사에 걸출한 가수 박재홍의 타이틀 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 1절분이다. 
사람은 이상적인 삶의 터전에서 사랑하는 식솔들과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보금자리에 대한 이상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종교문화속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다. 불교의 극락과 정토, 기독교의 천국, 도교의 무릉도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민족에게 뿌리 깊은 도참설(圖讖說)에 연유하는 ‘정감록’에 이상향의 표현으로 ‘길지문화(吉地文化)’가 있다. 
자연경관이 평화롭고 주거하기에 십상이고 무엇보다도 바깥세상의 혼란으로부터 안전하거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나라 안에 열 곳을 꼽아 십승지지(十勝之地)라 한다. 십승지의 조건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물자원이 충분하며, 농경을 통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환경조건과 토지, 토양의 규모와 질이 좋아 생산성이 풍족하고 사계절 기온이 분명한 곳이어야 한다. 이렇게 정해진 십승지는 높고 깊은 산을 끼고 있는 산간 오지가 대부분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조선중기시대에 불확실한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하기에 최적지라고 정한 것이다. 나라의 운명과 백성의 앞날에 대한 예언을 풍수지리학으로 풀어내어 길흉화복 따위를 예언한 예언서인 정감록의 사료일 뿐,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명당과 산에 대한 개념이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타협의 여지가 눈곱만큼도 없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극 처방으로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로 한 단계 완화된 처방을 쓰고 있다. 우리는 한 때 IMF라는 경제적 쇼크에 실직의 고통과 시름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현실을 피해 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 할 때가 있었다.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의 이유가 그 때와 유사한 상태이지만 산행 중에도 여전히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에 불편하기는 하다.   
그렇잖아도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어 주고 있다. 도도하게 흘러오는 민족의 역사를 통해 나라가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산은 처음과 끝에서 인간을 긍휼히 여겨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물질의 양분을 제공해 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었으며 인간다운 품격을 갖추는데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품성, 지식, 도덕 수준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기에 아낌없는 수련장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어머니는 신앙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산은 성지이다. 성지는 정복하는 것이 아닐 뿐 더러, 정복당하지도 않는다. 패권과 정복사로 이어지는 서구문명의 열패주의는 ‘등산’의 개념을 근대적인 스포츠의 행위에 두고 있으며, 또한 서구의 산악인을 알피니스트라 하여 기술과 장비를 동원하는 등 강렬한 정복 의지만이 그들이 등정하는 이유이다. 이런 등정주의가 언제인가부터 우리 산악문화에 엄연히 자리매김하고 있어 지구촌시대에 다소 인정은 하지만 하마터면 아름답고 바른 한민족의 산정(山情)에 금이 갈까 개운치가 않다.
산은 오르는 대상이 아니라 ‘어머니 품’에 안기듯, 산은 ‘들어가서’ 안식을 취하는 쉼터이다. 비브람을 신고 스틱을 휘저으면서 ‘엄마의 등’을 밟고 오르는 등산 행위를 위해 그 곳에 산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산문은 정중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반면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분별없는 자식을 두고 어머니는 노(怒)하지 않는다. 다만 엄격할 뿐이다. 
산의 신성 앞에 가볍고 건방지게 까불거나 그 품속을 오물과 쓰레기로 더럽힌다는 것은 어머니와 ‘나의 가치’를 팽개치는 것이다. 진정한 산악인은 산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산에 드는 사람의 윤리이기도 하다. 이 시국에 산에 드는 ‘나’는 이곳이 ‘나의 십승지’로 여기어 산에 드는 들머리에서 깨끗하고 맑은 정신을 가다듬고 설레어 보자.


<저작권자 © 울산매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문의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icon오늘의 인기기사
댓글 (200자평) 0
전체보기
※ 비속어와 인신공격성 글 등은 바로 삭제됩니다.
특히, 근거 없는 글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200자평)운영규칙 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44740) 울산광역시 남구 수암로 4 (템포빌딩 9층)  |  대표전화 : 052-243-1001  |  팩스 : 052-271-8790  |  사업자번호 : 620-81-14006
등록번호 : 울산,아01104  |   등록날짜 : 2017년 7월 13일  |  발행·편집인 : 이연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원
Copyright © 2020 울산매일. All rights reserved. 온라인 컨텐츠 및 뉴스저작권 문의 webmaster@iusm.co.kr RSS 서비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