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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편에 냉철하고 내편 아닌 사람을 포용했던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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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05.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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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주역이면서 후계자 양성 성공
강력한 왕도정치 펼쳐 국운 융성
사적(私的)요소 차단이 태종의 적폐청산

문대통령, 역사에서 교훈을 삼겠다면
내편 네편 안가린 용인술부터 배워야
정치가 역사를 도구화하면 웃음거리 돼

 

“백가지 선정(善政)이 한가지 악정(惡政)을 상쇄하지 못한다.” 이 명언은 떠나간 통치자들에게는 치적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지만, 살아있는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경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조선조 태종 이방원의 호방한 성품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치철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태종 이방원은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면서도 후계자 양성에 성공함으로써 국운의 융성에 크게 이바지하는 강력한 왕도정치를 펼쳐 나갔다. 
이른바 문민독재(文民獨裁)의 시작이었다. 쿠데타로 인한 계층간의 괴리와 민초들의 아픈 상처를 씻어 내면서 국론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태평성대를 열어 가겠다는 그의 염원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쿠데타의 상처가 아물고 명실상부한 문민정부가 수립되자면 줄 잡아 30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성계가 쿠데타에 성공하여 집권의 길을 트고, 정종·태종을 거쳐 명실상부한 문민정부라고 할 수 있는 세종이 보위를 이어 받을 때까지 28년의 세월이 필요 했듯이. 박정희 장군이 주도한 5·16 군사 쿠데타에서 제5·제6공화국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3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역사의 사이클이 그러하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태종이 왕위에 있었던 18년은 새로운 태평성대를 열기 위한 힘의 정치를 밀어붙인 유신의 기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쿠데타에서 유신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18년과도 맥을 같이한다.
태종은 다음 대(세종시대)의 태평성대를 열어가기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처남이자 세종의 외숙들인 민무질, 민무구, 민무휼 등 4형제를 사약을 내려서 죽게 했다.
태종의 원경왕후(元敬王后)가 격노한 건은 당연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태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원경왕후의 친가인 민씨일족의 공헌은 지대하였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였다. 제1차 왕자의 난 때는 창칼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장을 그들이 마련했다.
“외척(外戚)이 성하면 나라가 망한다.” 태종의 통치철학은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냉엄했다. 자신의 그림자와 같았던 충신 이숙번까지 귀양형에 처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태종식 ‘적폐청산’은 국가 경영에 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태종 이방원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발탁한 것이다. 황희, 변계량, 조말생, 최윤덕, 장영실 등 세종 시대의 주역들은 모두 태종이 키웠다.
황희는 고려에 충성하던 두문동 세력이고, 변계량은 숭유억불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 신자였다.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운 최윤덕 장군은 무신이면서 이례적으로 좌·우의정까지 올랐다. 코드만 따지고 자기 편만 쓰는 우리 현실정치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태종 이방원(재위 1400~1418)은 찬란한 세종시대를 확실하게 열어 가기 위해 환갑도 되기 전인 52세의 나이에 왕위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렸다. 이후 4년동안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지성으로 세종을 돌보았다.
태종은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만기는 세종이 친재하되 이원정부(二元政府)의 시작이었다. 이원정부에서는 왕명이 두 곳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명령이 나오는 두 곳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국정이 혼란해질 수도 있고, 국론이 불열될 위험도 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청송부원군 심온(沈溫)이 이를 지적하자, 격노한 태종은 자신의 사돈이며 세종의 장인인 심온이 귀국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자진(自盡)을 명한다. 세종이 애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 세종비가 머리를 풀고 맨발로 달려와 아비를 살려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여도 받아들이질 않았다.
태평성대를 열어 이끌어 가야 할 세종시대에 방해가 될 만한 인물, 어질고 착하기만 한 세종을 흔들어서 난정을 시도할 위험이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척분도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리하여 세종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태종의 노심초사는 처절하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세종시대는 태종 이방원의 호방했던 통치철학이 만들어 낸 걸작품이 분명하지만, 오늘을 사는 어느 누구도 태종을 위대한 군왕이라고만 평가하지 않는다.
‘백가지 선정이 한가지 악정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판국에 몇가지 잘 한 것으로 지나간 역사를 평가하려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음다.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세종에 비유하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굳이 역사에서 교훈으로 삼겠다는 뜻이라면 내 편에 냉철하고, 내 편 아닌 사람을 포용했던 태종의 용인술을 되새겨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역사를 일회용 소모품처럼 생각하거나 쓰려고 한다. 역사를 멋대로 도구화하면 품격을 잃고 웃음거리가 된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따갑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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