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15)

                                                                                                                           그림 : 배호

그날 밤의 야영은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다음 날 일행은 바위 밑을 벗어나 넓은 공터를 골랐다. 땅을 편평하게 고른 뒤 말뚝을 박고 사냥개들을 묶어 놓았다. 자신들은 온 몸에 진흙을 칠해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 다음 가랑잎을 끌어 모아 몸을 감추었다.

낮 시간이 그냥 지나고 저녁 무렵이 되자 멀리서 들리는 범의 포효가 골짜기를 울렸다. 멀리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문 서방니임.”

하문을 비롯한 일행들은 깜짝 놀랐다. 범의 포효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여인의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문은 귀를 잠시 후볐다. 헛것을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의 목소리는 익히 들었던 낯익은 소리였다.

“하문 서방님. 저 아령입니다. 어디에 계신지 알려주셔요.”

하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범을 노리고 있는 마당에 여인의 방문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이렇게 깊은 산 중까지 찾아온 것이 기이하기까지 했다.

“허허. 하문. 자네 집사람이 찾아 온 게로 구만. 매복은 글렀으니 나가보세.”

석도는 먼저 낙엽을 헤치고 나와 큰소리로 아령을 불렀다. 잠시 후에 젊은 하인 두 명을 거느린 아령이 하문 앞에 나타났다.

“서방님. 사정이 다급하여 이런 산중에서 뵙는군요.”

“사정이 다급하다니. 서라벌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이오?”

“있다마다요.”

하문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직껏 병 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 짐작했다. 마음이 금방 서라벌의 집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얼른 말해보시오.”

“숨 좀 돌리게 물 좀 부탁드립니다. 방금 전에 범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이곳 사정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군요.”

           “서라벌의 궁사들이 모두 나섰는데
           결국 잡지 못했습니다.
           서방님이 아니고는
           새를 떨어드릴 자가 없다합니다.”

 

아령이 물을 마시는 동안 하문은 조바심에 어쩔 줄 몰랐다.

“아버님께서는 안녕하신 것이지요?”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그런데 아령은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월정교에 새가 나타났습니다. 서라벌의 궁사들이 모두 나섰는데 결국 잡지 못했습니다. 서방님이 아니고는 새를 떨어드릴 자가 없다합니다.”

하문을 비롯한 화랑들은 웃음이 나왔다. 지금 범을 눈앞에 둔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것인지 답답했다. 세상에 아무리 사나운 새가 있다한들 범보다 무섭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서라벌에 나타난 새 한 마리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와 호들갑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아령이란 기생이 하문을 향한 연정 때문에 병이 난 것 같았다.

“하문 이 사람아. 이곳까지 달려 온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각시를 한 번 안아주시게. 하하하.”

하문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올랐다.

“이곳이 어디라고 아녀자가 함부로 찾아온 것인가. 썩 물러가도록 하게.”

하문은 큰 소리로 아령을 꾸짖었다. 잔 숨을 몰아쉬던 아령은 입을 딱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반겨 맞지는 않더라도 꾸짖을 줄은 몰랐다. 눈앞에서 자신을 꾸짖는 사람이 오매불망 그리던 님이 맞는가 싶었다. 불과 얼마 전 보름날 마다 만나기로 약속하고 순정까지 바치지 않았던가. 달려들어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꾸지람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령의 양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방님. 소녀더러 물러가라 하시었습니까?”

“…….”

“허허. 하문 너무 그러지 말게. 이 깊은 산중까지 찾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차분하게 들어나 보게.”

석도가 나서서 하문을 나무랐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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