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단절돼 하루종일 외부기관에 있는 아이들
신체·정신적 피로도 생각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
가정 우선시 되는 사회적 시스템·제도 개선 필요

안효찬 화암초등학교 교사

맞벌이, 저출산, 경제력에 따른 교육기회의 박탈 등의 이유로 지난 16년간 여러 형태로 돌봄서비스가 제공돼왔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돌봄서비스는 4가지 유형이 있다.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 청소년방과후아카데이, 마지막으로 초등돌봄교실이다. 초등돌봄교실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은 아동복지법 또는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운영된다. 하지만 초등돌봄교실은 법적근거 없이 교육부 고시를 통해 진행됐다. 사실상 교육부가 법적근거 없이 여론과 정치권에 밀려 수행한 것과 다름없다. 만만한 학교만능주의에 빠진 결과다.

사회적 이슈에 따라서 들어오는 많은 교육서비스들이 있다. 생존수영,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스마트교육, 소프트웨어교육, AI교육, 방과후교육 등 수없이 존재한다. 학교 본연의 교육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도 힘겨운데 매년 새로운 교육들이 도입되고 현장에 투입된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 ‘교육부의 입법예고’ 등 아동 돌봄서비스에 대한 전방위적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교육을 담당하는 일원으로 돌봄서비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부모나, 보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학생들을 온종일 부모와 단절된 외부기관에 맡겨두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온종일 돌봄서비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 완결판이다. 학교 돌봄이 시작된 이후로 돌봄 시간은 점점 확대됐다. 오후돌봄에서 시작해 오전돌봄으로 오전돌봄에서 이제는 저녁돌봄까지 이어진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공감대 형성과는 매우 동떨어진 정책이 바로 초등돌봄교실의 확대이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의 입장에서 돌봄교실은 부모를 아동으로부터 단절시키는 큰 매개체이다.

진짜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부모와 아동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역할이고, 그것을 뒷받침할 법률을 입법하는 것이 국회의 책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이 그동안 4가지 유형으로 분절되어 있는 아동돌봄서비스를 일원화 하고, 돌봄교실의 주체가 지자체로서 명명돼 지역특성에 맞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온종일 돌봄서비스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다.

첫째, 진정 돌봄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최우선은 아동이 부모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생활을 해야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엄격한 요건에 따라 필요한 사람들(한부모, 조손가정, 다문화)에게 충분히 제공되야 한다. 둘째, 학교는 본연의 교육기능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돌봄서비스는 지자체, 지역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돌봄교실의 돌봄강사의 선발과 채용, 프로그램의 운영 등 지역의 여건과 환경에 맞게 조직되는 것이 효율적이다. 셋째, 지자체나 지역의 예산의 부족으로 돌봄서비스가 끊어지지 않도록 교육부가 일정 부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건비를 제외한 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 운영비는 충분히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라 불릴만한 위치에 올라와 있다. 아동의 돌봄서비스도 선진국이 제공하는 기준과 범위에 부합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동의 입장에서 필요한 돌봄서비스가 외부기관에 맡겨지는 것인지 부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더욱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우리가 아동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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