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48)

                                                                                                                                                      그림 : 배호

양국 군사들이 모두 성을 나와 서쪽에 있는 주덕평야에서 열기로 했다.

양쪽 진영에서 백 명씩의 궁수들이 모였다. 한 사람씩 과녁을 쏘는 첫 시합은 양 진영이 막상막하였다. 한 진영에서 열 명씩의 궁사들이 활을 쏘았는데 단 한사람도 과녁을 빗나간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는 단체로 백 명의 궁사들이 2열 횡대로 섰다. 이백 보 앞에 있는 한 개의 과녁을 맞히는 방법이었다. 먼저 앞 열의 궁사들이 화살을 쏜 다음 뒤쪽에 대기해 있던 궁사들이 다음 화살을 쏘았다. 오십 개씩의 화살이 한꺼번에 한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신라 진영의 화살은 여든 아홉 개가 과녁을 뚫었고, 고구려측 화살은 여든일곱 개의 화살이 과녁에 꽂혔다. 약소한 차이로 신라궁사들이 앞섰다. 고구려의 왕세자는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내일은 진검을 사용한 검술대회를 열기로 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모레는 단체경마대회를 열도록 하지요.”

“좋소. 내일 봅시다.”

고구려 왕세자는 활에서 패배한 분풀이를 진검을 사용한 승부로 앙갚음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서라벌의 왕세자는 속셈을 빤히 알면서도 승낙했다. 왕세자는 가잠성으로 돌아와 다음날 검술대회에 나갈 군사들을 모아놓고 특별 훈련을 실시했다.

“절대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마라. 그 다음은 최대한의 방어로 스스로 목숨을 보전하라.”

신라군사들은 목검으로 연습을 했는데 상대의 목을 노리면서도 실제로는 손목을 쳐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훈련에 집중했다.

               “절대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지 마라.
               그 다음 최대한의 방어로
               스스로 목숨을 보전하라.”

 

다음 날 아침부터 주덕평야에는 양쪽의 군사들이 빽빽하게 모여 들었다. 가잠성의 신라 군사들은 남쪽에 진을 쳤고, 고구려의 군사들은 북쪽에 진을 쳤다. 모두 합쳐 천여 명의 군사들이 주덕평야를 덮었다. 기치와 창검이 햇빛에 눈부셨다. 큰 북을 다섯 번 치자 시합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나온 사람은 양쪽 진영 모두 제일가는 검객이었다.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환두대도를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이 모두 팔척장신에 건장한 체구였다. 시합이 시작되자 고구려의 장수는 무서운 기세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검 끝이 목을 향하고 들어오는데 살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신라의 장수는 침착하게 옆으로 비켜서며 검을 피했다. 첫 공격에 실패한 고구려 장수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시도했다. 역시 목을 베러 들어왔다. 신라의 장수는 자세를 한껏 낮추어 칼날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짧게 칼을 휘둘러 상대의 발목을 쳤다. 고구려 장수는 발목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움찔했다. 칼등으로 공격을 했기에 망정이지 칼날로 공격했더라면 발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잠시 주춤하더니 고구려 장수는 다시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맹렬한 기세였다. 그러나 발목의 통증 때문에 움직임이 신속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자세가 기우뚱했다. 자연히 공격의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라 장수가 목 공격에 실패한 고구려 장수의 손등을 칼등이 내려쳤다. 칼을 바닥에 떨어뜨린 고구려장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큰 북이 세 번 울렸다. 시합이 끝났음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다음번 장수들이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고구려 장수의 키가 눈에 띄게 작았다. 신라 장수의 키에 비해 머리 하나는 적은 듯했다.

“둥둥둥둥둥.”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다섯 번 울렸다. 이번에는 고구려 장수가 급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게 검을 잡고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 신라의 장수가 주춤했다. 어제 저녁에 공격은 하지 말고 방어 위주로 대응할 것을 연습했던 터라 공격을 감행하기가 난처했다.

“뭣들 하느냐. 어서 공격하라.”

보다 못한 고구려의 왕세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고구려장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신라장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신라 장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상대를 직접 쓰러뜨릴 위협적인 공격을 하지 말라고 주문을 받았던 터라 대충 목을 노리는 척 칼을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있던 고구려 장수는 잽싸게 자세를 돌려 칼끝을 피한 다음 칼날을 옆구리에 들이밀었다. 칼날은 갑옷 사이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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