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바위에 불상이나 글자·그림 새김을 뜻하는 마애
오늘날 인류문명의 수수께끼 풀게 해주는 단초
비록 유적은 아니나 역사적 기록유산으론 의미 커 

 

 

우리나라 산천을 비단으로 수놓은 것 같이 수려하다 하여 금수강산이라 한다. 이런 산천을 자아내는 근본적인 조건에는 ‘돌’이 있어야 한다. 돌을 일상용어로 ‘돌멩이’라고도 하며 큰 자갈을 ‘짱돌’이라고 하는데 그 쓰임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돌은 바위보다는 작고 자갈보다는 크다. 이 때 ‘바위’는 부피가 꽤 큰 돌을 말하며 사람이 기대어 잠시 쉬었다 갈수 있을 정도이어야 바위이다. 또한 바위는 형태나 성분에 따라 학술적으로 암석이라고도 하며 크기와 위치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인류는 동서고금을 통해 자연숭배의 주술적 의미로 나무·바위·돌·물 등과 같은 주물을 대상으로 하는 페티시즘은 애니미즘의 대상보다 더 영험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리고 고대 인류는 자신들의 삶의 수단을 주로 바위에 새겨 두었다. 그 선조들의 행위와 자취는 오늘 날 인류문명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절대적이다. 바위 자체가 유적이 될 수는 없지만 바위를 소재로 표현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유산은 물론, 예술성의 가치를 보호함으로써 우리는 ‘낡은 것에서 미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바위는 침묵과 힘의 상징이다. 바위는 남성의 웅심과 기상을 표현하기도 하다. ‘강한 날에는 경전을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이 마땅한 날이라 우리의 마애(磨崖) 유적유물을 찾아 나섬으로 차분하게 긍지를 높여 본다. 때로는 어머니 같이 푸근하고 어느 때는 옛날 아버지의 힘줄에 매달리던 자식이 되고 싶어, 즐겨 찾는 그 분(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상(보물199호)에게 가는 길이다.

소서(小暑)에 접어든 장마로 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 낼 듯 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 그럼에도 서출지 연꽃들의 자태는 오히려 더 영롱하다. 잠시 이요당 앞에 서서 삼국유사 속 사금갑(射琴匣)의 전설을 ‘나’에게 스토리텔링 해본다. 서출지를 지나 칠불암을 향해 승소골에 들어서면서 곧 바로 천동골과 바람골을 지나가게 된다. 이윽고 동남산에서 제일 깊은 봉화골짜기를 이어주는 흠태골에 들어서면 급히 흘러내리는 냇물 옆으로 된 비알이 시작된다. 하늘을 덮은 솔가지 사이로 바람이 한 차례 상큼하게 불어온다. 봉화대능선에 오르는 가파른 경사자락에는 남산유적 중 가장 규모도 크거니와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칠불암이 있고, 배경으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장관을 이룬다.

아니나 다를까, 일곱 불상의 눈치를 받으며 가풀막을 기어오르는데 갑자기 억수가 퍼 붓는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저 위에 계시는 ‘오늘의 아버지’가 어디로 가실 것은 아니니까. 마애란, 바위에 글자나 그림 등을 새기는 것이다. 주로 불상을 바위에 음양각으로 조각하는 것을 말한다. 또는 바위에 명문을 남기는 것도 마애라 할 수 있겠다. 명문으로는 ‘천전리각석’ 명문을 기록유산으로써 국보로 정하고 있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불상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있는 부처님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세상으로 모신다고 자부하였다.

비가와도 부처님이 젖지 않도록 바위 윗면을 약간 앞으로 돌출되게 경사를 지어 깎아내고 그 안쪽으로 배광을 감실모양으로 파면서 돋을새김으로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는 보살상을 나타내었다. 오른손에는 화려한 보상화를 들었고 왼손은 설법인을 표시하였고 연꽃이 드려진 구름을 타고 천상에서 세상으로 내려오시는 모습에서 맑은 피가 도는 듯 따스함을 느끼기에 그지없고 두툼한 아랫입술은 누구에게나 정답고 낯익은 얼굴이다. 허리에는 치마끈이 매어지고 그 자락이 의자위로 흘러 내렸는데 왼쪽 발은 그 자락위에 편안히 얹어놓고 오른 발은 의자아래 내려 걸터앉은 이분의 앉은 자세를 반가상이라고 하는 이는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통일신라 마애보살상으로 유일한 유희좌(遊戱坐)관음보살상 인 것이다.

‘님’을 마주보고 서 있을 수 없는 공간, 아니 허공이다. 판초에 떨어지는 억수 소리 외에는 ‘님의 숨결’뿐이니 경건이 오히려 고요이다. 시상(詩想)에 젖는다.
‘바람 골 지나서/너덜겅을 오르고/하도 험해서/마뜩치 않았었는데/오직 당신 앞에 서면/“먼 길 왔구나.” /그 말 한마디 들으려니/오늘도 당신은/아무 일도 아닌 듯/거지중천(居之中天)만 하시니...그러니 어쩌리오/간곡한 만남이라/풀어 사무친 억장/그렁그렁 서러움만 넘치니’(님을 향한 詩23.)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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