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웅은 일단 힘이 세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힘을 보여줄 수 있어야 됐다. 전투를 해서 많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던 시대엔 몸집이 크고 용맹스럽게 잘 싸우는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고대 로마의 영웅들은 연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통째 손에 쥐고 마구 뜯어 먹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어 의지가 강한 사람이 굉장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부터 영웅의 조건은 달라졌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유명하다. 나폴레옹 장군이 백마를 타고 춥고 험한 알프스산을 넘어가면서 지친 군사들에게 ‘여기서 물러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자’고 외쳤다. 나폴레옹을 최고영웅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은 나폴레옹이 주인공이다. 베토벤은 서른살이 되기도 전에 귀가 멀어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운명, 너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며 베토벤은 울부짖었다. 상상속에서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귀가 먼 후에 만들어진 곡들이 오히려 더 깊이있는 감동을 줬다. 시련을 겪으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폴레옹을 떠올리면서 이겨냈다. 
영웅도 죽는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에서 영웅 아킬레스는 말한다. “싸움을 계속한다면 살아 고향에 갈 순 없겠지만, 불멸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영웅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그리스어 클레오스(Kleos·영광)와 호라(Hora·시간), 영광과 함께 죽음의 시간도 반드시 온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6·25 전쟁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한 백선엽 장군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외친 말이다. 7월 10일 별세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6·25의 살아있는 전설’ ‘구국영웅’ ‘한·미 동맹의 상징’등 업적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보훈처는 서울현충원이 포화상태라는 이유로 대전 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고인은 생전에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친일파로 낙인찍은 호국영웅의 마지막 가는길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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