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일상과 늘 함께였던 꿩에 담긴 추억
어머니의 요리‧친구들과 사냥 때때로 떠올라
반가운 지인 오면 맛있는 꿩조림 대접하고파

 

김해자 울산문인협회 사무국장

‘당신이 먹어본 것 중 가장 담백한 요리는 무엇인가.’ 하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꿩 요리’라고 말하고 싶다. 꿩 뼈와 무로 육수를 만들어 먹는 ‘꿩토렴’을 맛본 사람들은 내 말에 동감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맛이 없을 때 담백하다고 한다는데 혹시 그 맛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꿩의 맛을 표현하기에는 내 어휘력이 부족해 차라리 뒷글로 대신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꿩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속담이다. ‘꿩 대신 닭’이라던가, ‘꿩 구워 먹은 자리에 재만 있다.’는 속담으로 꿩의 맛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슴살로 만든 ‘꿩토렴’과 함께, 어릴 때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꿩조림’도 좋아한다. 즐겨 먹다 보니 맛내는 것도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조림에는 까투리가 제 맛이다. 냄비에 까투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고 약한 불 위에 올려두면 수분과 기름이 자글자글 나온다. 제 몸에서 나온 수분이 꿩을 다 익히면 채소랑 갖은양념을 넣은 뒤 조금 센 불에서 자작하게 조린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꿩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겨울이다. 눈이 내린 뒤 들판에 청산가리를 넣은 흰콩을 몇 알 뿌려놓으면 그것을 먹은 꿩이 쓰러져있다. 사십 년도 지난 시골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던 풍경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기억이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내가 꿩을 마지막으로 잡으러 간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몹시 추웠다. 콩을 들에 뿌려놓고 꿩이 주워 먹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숨어 있었다. 평소에는 콩을 뿌려놓고 몇 시간이 지난 뒤나, 다음날 꿩을 찾으러 갔었는데 그날은 친구들과 악당의 끼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한 친구가 성냥을 가져와 우리는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려고 성냥을 그었다. 성냥에 불이 켜지자마자 바람이 불었다. 그 불은 옆에 서 있는 소나무로 바로 옮겨갔다. 양지쪽 산에는 들녘보다 눈이 일찍 녹았다. 건조한 산에서 매서운 바람은 불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산 하나를 다 태운 뒤, 아직도 가끔 꿈에 나를 찾아온다.

꿩 사냥 이야기를 남편과 가끔 할 때가 있다. 제주에서 태어난 남편의 꿩 사냥은 이렇다. 제주 성산포 바닷가에는 돌로 만들어 놓은 성이 있다. 아침 일찍 바닷가에 아이들을 모아 두 편으로 나눈다. 성을 중심으로 한편은 육지에서 바다로 꿩을 쫓고 나머지 한편은 바다로 날지 못하게 육지로 몰이를 하면 꿩이 지쳐 아무 곳에나 고개를 처박아 꼬리만 보인단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꿩을 산채로 집에 가져오는 것을 금기시했다. 어린아이들에게 꿩을 죽여야 하는 일이 곤혹이었다. 그러나 장끼 꼬리로 깃대를 만들고 그 화려함으로 힘을 뽐내는 군대놀이는 그 시절 놀이문화로 최고였다고 한다.

사월과 오월쯤 유채밭 속에서 꿩알과 꿩병아리를 잡던 기억을 이야기할 때는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 얼굴에 표정도 어리다. 무를 썰어 넣고 국을 끓여 먹던 이야기를 하면서 시원한 맛이 기억나는지 입맛도 다신다. 유독 꿩이 많은 제주도에서 유년을 보냈으니 꿩에 대한 이야기가 신이 날만도 하다.

꿩은 성품이 청렴하며 절개가 곧다고 전해진다. 생김이나 행동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돌연변이로 생긴 흰 꿩은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고, 흰 꿩이 나오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룰 위대한 성현이 나타난다고 믿기도 했다. 굿을 할 때나 농악대의 농기 맨 위에 꿩의 꼬리털을 꽂아 두었는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여긴 이유인 모양이다. 은혜를 갚고, 남을 존경할 줄 아는 양반 새, 지조를 지키는 까투리 등 꿩에 대한 많은 전설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맛으로 우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반가운 지인이 예정 없이 집에 찾아오면 꿩 요리를 해주고 싶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있다가 홀연히 끼니때가 된 것을 깨닫는다. 나는 생각났다는 듯 꿩을 꺼내 조림을 만들고 그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지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낸 산불의 악몽을 조금이라도 치유하고 싶다. 언제라도 그런 날을 대비해 꿩 한 마리는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몇 마리 주문해 먹던 꿩이 남아 있나 냉동실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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