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영울산 남구 삼산동자치위원장

권력자,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무척 매력적이지만
후대에 기록되는 건 두려운 일…역사, 모든 답 가지고 있어
내가 사는 이 시대의 권력자들, 역사로 기록될때 영예롭기를

어느새 지긋지긋하던 무더위는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무서운 가을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자국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지만 계절의 변화만큼은 거스를 수 없는 듯하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3밀(밀집, 밀폐, 밀접) 장소 피하기 등에 따른 스트레스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도서관주간 공식주제처럼 ‘도서관 책 한권, 세상을 테이크아웃’ 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하겠다. 
요즘 ‘권력’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회자된다. 더욱이 권력이 돈을 만났을 때를 한 번 생각해보라. 권력형 부정부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가까운 역사만 보더라도 권력에 매몰된 리더들의 말로가 이를 대변한다. 최근 서점에서 조민기 작가의 소설 ‘조선의 권력자들’이 필자의 눈길을 끈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권력이라는 ‘괴물’이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파생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 지를 한 번 고민해 보고 싶었던 탓도 있었다. 
우선 TV 드라마 등을 통해 익숙한 내용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았다.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소설 ‘조선의 권력자들’은 1인자인 왕보다 오히려 더한 권력을 누린 ‘시대의 2인자들’의 이야기여서 더욱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중기(광해군) 때부터 조선 말기(고종)까지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점도 무척 좋았고 역사적 지식도 보태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저자가 꼽은 시대의 권력자들은 이이첨, 김자점, 송시열, 홍국영, 김조순, 흥선대원군, 명성왕후, 김홍집 등 8인이다.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을 통해 어떤 시대를 만들려고 꿈꾸었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떠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놓았다. 
실패한 군주 광해군 시대의 권력자 이이첨은 거짓 역모를 통한 권력을 누리다가 진짜 역모로 무너진 희대의 간신으로 묘사된다. 또한 인조반정으로 권세를 잡은 김자점과 송시열은 오만한 권력자로 나온다. 정조에 대한 의리만큼은 상남자였던 홍국영, 그리고 안동김씨 시대를 열고 본인의 죽음 이후에도 자손들이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권력에 취하지 않고 그 힘을 남용하지 않은 김조순의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결코 적을 만들지 않았으며 권력을 얻을 때마다 자신을 낮춘 진정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의 고종과 명성왕후, 흥선대원군과 김홍집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 등으로도 많이 제작돼 그 내용을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에는 그런 특별한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흥선대원군의 시선으로 또 명성왕후의 입장에서 그리고 아관파천이 있던 날 왕(고종)의 배신으로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한 김홍집의 생각으로 한 번 읽어보도록 유도한다. 적어도 조선후기 역사만큼은 다시 해석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흥선대원군과 명성왕후의 처절했던 권력다툼은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고, 욕되면서도 영광스러웠던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끝내 왕비로서의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나 왕후로서의 숭고함은 얻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조선의 마지막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 ‘조선의 권력자들’은 울림이 남다르다. “내가 사는 이시대의 권력자들이 후대에 역사로 기록될 때, 부디 영예롭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공감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력자가 된다는 것. 권력을 갖는 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이다. 무릇 권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권력자로 기록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역사는 그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외침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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