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의 원 지류 백운산 대곡천 58년 전 단절
공룡발자국‧암각화 등 문화의 보고 훼손 가중
산과 강-선사와 미래 잇는 ‘화합의 태화’ 만들자

이기우

문화예술관광진흥연구소 대표/(사)해돋이관광협의회 이사장

태화강은 축복의 강이다.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몇 되지 않는 강이다. 조수간만 차이가 없으니 만조 때 홍수로 범람하더라도 이내 복원되는 고마운 강이다. 인재(人災)가 아니라면 태풍에 범람하는 태화강 자체가 관광적 요소이다. 아름드리 꽃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다양한 대나무 자체와 초록빛의 군락, 바람에 비벼대는 댓잎소리가 정겨운 것이다. 그러니 인위적인 시설물을 갖추지 않아야 지혜로운 것이다.

태화강 발원지는 백운산이다. 태화강의 원 지류인 백운산 대곡천에는 선사인들의 역사보고서인 타임캡슐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울산의 대동맥이자 젖줄인 태화강의 원 지류가 단절됐다. 불과 58년 전인 1962년부터 조성됐던 공업의 원천 사연댐의 심한 후유증이다. 이로 인해 수천 년을 견뎌왔던 한민족 문화원형인 암각화가 사연호에 잠겨 훼손이가중되고 있다.

태화강의 대곡천은 문화관광의 보고(寶庫)이다. 천전리계곡과 대곡천에 이르는 공룡발자국화석 군락이다. 초식 공룡과 ‘노바페스 울산엔시스’로 명명된 육식 공룡들의 서식처이다. 선사인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은 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한 천전리암각화가 있다. 법흥왕 시절 암각화(書石)의 진가를 알아본 왕가의 사람들이 왔다. 삼맥부지, 법민랑은 훗날 진흥왕, 문무대왕이 됐다.

태화강의 태화루는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의 건의에 의해 지어졌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고, 그 종각인 태화루가 들어섰다. 고려 성종이 서라벌을 순행하고 이곳 태화루를 찾았다. 큰 물고기를 발견했는데 임종을 하기 위해 찾은 포착고래였으리라. 태화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 이후 2014년에 와서야 지금의 태화루로 복원 중창됐다. 사가 서거정이 태화루 한시를 남겼다. 황용연 푸른 물과 학의 등을 탄 듯, 자라머리에 오른 듯한 기이한 체험담이 정겹다.

태화강 태화루는 종각이었다. 울산대종은 40년에 걸쳐 한민족의 혼을 담아냈던 성덕대왕종을 롤모델로 주조해 2005년 울산대공원에 건립됐다. 맞은편 남산의 산자락에서 국가의 화합을 기원하며 추었던 개운포의 젊은 영웅 처용의 이야기와 해넘이와 철새들의 군무를 조망하며 종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원한다.

태화강의 반구대는 성리학의 요람이다. 고려말 언양 요도에 유배왔던 포은 정몽주가 찾아왔다. 자연 속에서 시를 쓰고 글을 읽고 벗과 교우했던 성리학의 시조인 셈이다. 그가 개경으로 복직됐고 이방원이 집에 초대되어 ‘하여가’에 이어 ‘단심가’로 화답한 것은 바로 작괘천과 반구대에서의 결심이었으리라. 이후 회재 이언적과 한강 정구가 시를 남겼고 훗날 유림들에 의해 반고서원이 세워졌다.

구곡문화와 함께 최부자의 직계인 운암 최신기가 집청정을 세웠고, 시인묵객 260명이 한시(漢詩) 406수를 남겼다. 정조대왕의 궁정화가 겸재 정선이 화첩기행을 한 곳이다.
태화강은 새들의 보금자리이다. 강의 상류에서 다양한 지류들이 합수되어 삼각지를 이루고 하류를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모래톱의 형성과 강물의 깊이에 따라 키가 큰새, 작은 새, 물고기를 잡아 먹는 새, 풀을 뜯는 새 등 형형색색의 다양한 새들이 모여 서식하는 곳이다. 강을 따라 새들을 망원경으로 관망하면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태화강은 범람과 회복이 반복되며,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방어진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흐른다. 본디 하나였던 태극지형의 굽이굽이 대곡천이 합수하고, 선사시대 반구대문명의 서석곡과 조선시대 구곡을 걷게하자. 울산의 교향시, 울산의 오페라가 울려 퍼지는 도시로 만들자. 태화루에서 울산대종이 울리게 하자, 사람과 새, 공룡과 반구대암각화 고래, 좁은 수족관 고래도 불러내자. 산과 강과 바다를 잇고, 선사와 미래를 잇는 화합의 태화가 되는 미래를 향한 그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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